▲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문재인 정부 성패의 가늠자가 될 개혁과제는 무엇일까. 소득주도 성장으로 통칭되는 경제개혁일 것이다. 새 정부가 참조 대상으로 삼는 노무현 정권은 정치개혁·남북관계에서 성과를 냈음에도 비정규직 축소, 부동산 투기 억제, 지방경제 발전에서는 국민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국민이 체감하는 정부 정책의 성과는 결국 민생에 관련된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은 이론적으로 보면 소득 증가가 기업투자와 노동생산성 양자 모두를 증가시킨다는 주장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소득 증가가 소비를 증가시키고, 기업 판매량 증가와 생산설비 가동률 증가로 이어진다. 이때 생산설비가 판매량을 감당할 수 없으면 기업은 생산설비를 확대하기 위해 투자를 늘린다. 기업 투자 증가는 고용의 증가며, 고용의 증가는 다시 노동자 소득 증가로 선순환한다.

임금 상승은 기업 이윤을 단기적으로 줄이지만, 기업은 상승된 임금을 상쇄하기 위해 생산성 혁신에 몰두하게 된다. 저임금에 기대어 돈을 버는 기업보다, 높은 임금에도 이윤을 내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기업이 당연히 시장을 선도한다. 이렇게 기업투자가 늘고 노동생산성도 증가하니 국민경제는 성장한다. 소득주도 성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수출기업들의 비용경쟁력 하락을 우려하지만 비용 증가는 노동생산성 상승으로, 수출 감소는 내수 증가로 충분히 보상된다.

그렇다면 정부가 어떻게 가계 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운동 기간 내세운 정책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임금소득을 제도적으로 직접 높이려면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차별해소, 공공일자리 확대, 청년고용 지원제도 신설, 노동시간단축 등이 필요하다. 둘째, 임금소득을 지속적으로 상승시키려면 우리나라 고용의 80%를 책임지는 중소기업의 지불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원·하청 공정거래, 원·하청 성과배분제, 대기업 내부거래 규제 등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 셋째, 취업자의 30% 가까이를 차지하는 자영업자의 소득 증대를 위해 중소상공인 보호대책(대형마트·SSM 규제)이 강화돼야 한다. 넷째, 높아진 소득이 부채 상환이 아니라 소비 증가로 이어지도록 가계부채를 철저하게 관리(총량관리·취약계층 경감 등)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개혁 정책은 꽤 일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개혁정책들은 사실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몇 가지 근본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먼저, 문재인 정부가 산업정책의 전면에 내세우는 4차 산업혁명이 소득주도 성장과 모순된다. 최근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디지털 경제를 주축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은 소득불평등을 확대하는 경향이 강하다. 예로 애플·구글·마이크로소프트·페이스북 같은 미국 디지털 선도 기업들은 미국 노동자의 소득 증가에 거의 기여를 하지 않는다.

지적재산권과 정보망 독점을 통해 돈을 버는 디지털 기업들은 숙련이 낮은 노동자를 고용할 필요가 없다. 전후방 연관효과를 발생시키는 생산설비에 돈을 쓸 이유도 없다. 이들이 버는 엄청난 이윤은 설비투자와 고용이 아니라 기관투자자들에 대한 고액배당과 자본시장 투기를 위한 금융자산으로 사용된다. 즉 디지털 기업들이 성장하는 만큼 노동자 소득이 증가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재벌의 사내유보금 증가는 이들의 금융적 축적에 비하면 정말 ‘새 발의 피’ 정도다.

결국 소득주도 성장과 디지털경제가 공존하려면 지적재산권과 네트워크 독점으로 발생하는 이윤을 높을 과세를 통해 재분배하거나, 아예 지식과 네트워크를 소유 대상으로 삼지 않는 소유권 변혁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새 정부 정책을 보면 소유권 변혁 같은 급진 정책은 두말할 나위 없고, 과세에 대해서도 매우 소극적이다. 그런데 토마 피케티나 조지프 스티글리츠 같은 세계적 경제학자들이 지적했듯 21세기 경제는 계급적(신자유주의)으로나 기술적(4차 산업혁명)으로나 지대 추구(rent-seeking) 또는 세습된 부가 소득에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소득주도 성장이 4차 산업혁명 정책과 함께 가려면 국가가 소득을 과세로 직접 재분배하고, 더 나아가 재산(富) 자체를 재분배하는 것을 피해서는 안 된다.

다음으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은 소득 주체의 힘을 키울 현실적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은 반쪽 성장론이다. 새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은 더불어민주당이 스스로 밝혔듯 국제노동기구(ILO)의 임금주도 성장론과 미국 민주당의 포용적 성장론을 차용한 것이다. 두 이론이 임금(소득)을 경제성장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임금이 시장의 수요-공급 법칙만이 아니라 시장 밖의 다양한 제도에 의해서도 결정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이론들이 지적하는 제도의 핵심은 당연히 노동조합 교섭력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핵심 정책도 노조 교섭력을 키우는 개혁이다.

그런데 새 정부가 노조에 대해 보이는 태도는 이와는 반대인 것 같다. 새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론을 이야기하면서도 노조할 권리, 노조의 교섭력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나 주변 인사들을 보면 노조를 적대하는 분위기도 많이 나타난다.

노조 없는 소득주도 성장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소득주도 성장론의 이론적 토대 자체를 허무는 것이다. 요컨대 문재인 정부 성패를 좌우할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산업정책과 노조정책에서 자기모순이 존재한다. 만약 새 정부가 이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결국 도로 재벌 수출주도 성장, 도로 노동자 쥐어짜기 성장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새 정부 경제개혁 성공의 키는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보다는, 노동조합이 혁신을 통해 교섭력과 조직력을 키울 수 있느냐 여부에 있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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