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한 심정입니다. 노조활동을 하는 것이 무슨 죄라도 됩니까. 왜 법적으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데 협박을 받아야 하나요?”

동부증권 A지역본부 영업점에서 일하는 50대 증권노동자 B차장의 주장이다. 그는 11일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회사가 원격지 발령을 예고하며 노조 탈퇴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동부증권에 노조가 생긴 때는 지난 3월 말이다. 동부증권 창사 36년 만이다. 성과에 따라 임금의 70%를 깎는 극단적인 임금체계가 도입된 뒤 참다못한 노동자들이 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를 모았다. 그런데 불과 한 달여 사이 특정 지역 조합원들이 일시에 노조를 탈퇴하는 일이 반복됐다. 회사 압박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정황과 실제 압박을 받았다는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노동존중”을 공언한 정부가 출범했지만 현실에서는 겨우 만들어진 노조를 지키기도 버겁다.

타지 발령 협박에 조합원 '우수수'

노동계에 따르면 최근 동부증권 A지역본부 소속 영업점에서 일하는 사무금융노조 동부증권지부 조합원 26명이 노조에 탈퇴 신청서를 보내왔다. 노조는 회사가 탈퇴를 압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탈퇴서 양식이 동일하고 서류가 일시(5월8일)에 접수됐으며 조합원 대다수가 탈퇴했기 때문이다.

노조는 "모든 탈퇴서에 정확히 이름·소속·부서·연락처 순으로 인적사항을 기재하고 있고, 담긴 문구도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A지역본부에는 총 4개의 동부증권 영업점이 있다. 해당 영업점 직원 중 지부 조합원으로 활동했던 인원은 총 29명이다. 그중 26명이 8일 탈퇴서를 냈다. 2명 탈퇴서는 10일 접수됐다. 탈퇴서 형식과 내용은 26명이 낸 것과 같았다. 현재 B차장만 유일하게 조합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동부증권은 이달 1일자로 인사발령을 내렸다. A지역본부 책임자로 직전까지 서울 영업부에서 일했던 C씨가 내려왔다. B차장은 “C본부장이 1일 발령일을 전후해 두 번 찾아와 노조를 탈퇴하지 않으면 원격지로 발령을 낸다고 협박했다”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따졌고, 노조 탈퇴가 한꺼번에 이뤄진 8일 이후에 한 번 더 찾아와 탈퇴를 종용했다”고 말했다. A지역본부 다른 영업점에서 일하는 D차장도 “노조 탈퇴 전 조합원들의 여론을 수렴하는 역할을 했는데, 직원들이 지점장들에게 '사장이 노조가입 전으로 되돌려 놓지 않으면 지점 한 개만 남기고 모두 폐쇄한다'고 말하며 노조 탈퇴를 종용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사내 인트라넷 차단, SNS 홍보 막아

회사의 압박은 지부가 결성된 직후부터 시작됐다. 지부가 설립식을 갖고 공식 활동에 돌입하자마자 동부증권은 사내 인트라넷에 올린 직원 이메일 주소와 휴대전화 연락처를 즉각 삭제했다. 지부가 직원들의 노조 가입을 권유하고 활동 소식을 전파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이어 인트라넷 자유게시판에 노조 소식이 올라오자 게시판 자체가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지부는 자유게시판이 사라지자 스마트폰 단체 채팅방을 개설해 300여명의 직원들과 함께 노조 소식과 활동 계획을 공유했다. 그런데 지금은 참가자가 3분의 1로 줄었다.

지부는 “여러 직원들이 채팅방을 나가면서 ‘관리자들이 채팅방에 이름만 올려도 불이익을 주겠다고 했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탈퇴했다”고 전했다.

지부는 A지역본부를 시작으로 다른 지역으로도 노조 탈퇴 압박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노조는 이날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남부지청에 회사를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고소했다. 김호열 노조 증권업종본부장은 "대신증권·동부증권처럼 장기간 무노조 경영을 딛고 노조가 설립되면 회사는 보란듯이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며 노조 힘을 뺀다"며 "부당노동행위를 인권유린의 중대범죄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매일노동뉴스>는 동부증권쪽과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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