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장준 희망연대노조 정책국장

고3 현장실습생 홍수연양이 콜수 압박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통신과 케이블방송 업계는 ‘실적’이라는 말로 노동을 수치화해 실시간으로 기록한다. 회사는 이 지표를 기준으로 노동자들을 등급화하고 노동을 쥐어짜는 도구로 사용한다. “아빠, 나 콜수 못 채웠어”라는 홍양의 문자는 지표에 노동을 저당 잡힌 우리 시대 노동자들의 힘겨운 사투를 보여 준다. 희망연대노조가 ‘지표지옥’에서 비용절감과 실적압박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4회에 걸쳐 전한다.<편집자>


“나중에 설치 잘 받았냐고 문자 오면 꼭 만점 부탁드립니다. 1점만 깎여도 월급 차감돼요.” 지난해 한 인터넷 설치기사가 고객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해피콜’ 평가 때 만점을 달라고 부탁했다. 메시지를 받은 고객은 이 사연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이것 보고 너무 가슴이 답답했다.”

만족도 조사, 이른바 해피콜은 현장 노동자들은 물론 고객 가슴까지 답답하게 만든다. 그것도 매일 매시간.

삼성전자서비스에서 휴대전화를 고치는 애니콜 기사든, SK브로드밴드 초고속인터넷을 설치하고 수리하는 행복기사든 기술서비스 노동자들은 고객에게 늘 이렇게 말한다.

“만족도 평가 만점 부탁드립니다.”

업종과 지역은 다르지만 해피콜을 둘러싼 풍경은 비슷하다. 고객에게 ‘만점’이나 ‘매우 만족’을 받지 못하면 원청은 하청에 내려보내는 돈을 줄인다. 하청업체는 당연히 원청과 재계약을 맺을 가능성이 낮아진다. 그래서 하청업체는 노동자들을 쥐어짠다.

방송통신업계에서 이 같은 고객서비스(CS) 평가는 전체 평가의 20~40%을 차지한다. 심지어 고객이 노동자의 용모와 복장을 ‘매우 만족’부터 ‘매우 불만’까지 평가하기도 한다. LG유플러스의 만족도 평가 항목은 △개통·AS 전반적 만족도 △시연·사용법 설명 △원하는 시간 방문 △사전 연락 △용모·복장 △친절도 △깔끔한 뒷마무리 △신속한 일처리 △개통 후 장애·재장애로 이뤄져 있다.

문제는 ‘매우 만족’이 아닌 ‘만족’ 평가를 받으면 등급이 하락한다는 점이다. LG유플러스가 서비스센터를 평가하는 지표를 보자. 모든 항목에서 ‘매우 만족’과 ‘만족’은 2점 차이다. 종합점수로 2점마다 등급이 갈린다. 98점 이상이면 S등급, 96점 이상이면 A등급, 94점 이상이면 B등급, 92점 이상이면 C등급, 92점 미만은 D등급, 80점 미만은 'Critical Level(위험수준)'로 평가된다. 특히 용모·복장 평가 98% 이상인 서비스센터만 S등급을 받을 수 있다. 케이블방송 티브로드는 CS를 평가할 때 1점 단위로 등급을 나눈다.

‘만족’한 고객이 한둘이라도 있다면 난리가 난다. “CS에서 깨지면 그달은 끝이라고 보면 된다”는 것이 현장 분위기다. 원청은 CS 평가와 영업실적으로 업체들을 줄 세우고, 이를 계약·해지에 활용한다. 지표가 하락하면 장려금이 차감되고 재계약에서 불리해진다. 하청은 기를 쓰고 노동자를 쥐어짠다. 평가와 실적에 대한 압박은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원청인 대기업은 하청업체가 노동자들의 온몸을 비틀고 고객이 노동자에게 갑질을 할 수 있도록 꼼꼼하고 촘촘하게 지표를 설계한다. 하청업체들은 지표에서 가산점을 받기 위해 야간과 휴일에도 노동자들을 현장으로 내몬다. 노동자들은 평가를 좌지우지하는 고객의 부당한 갑질과 회사의 부당한 지시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은 하도급 구조 속에 갇혀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에 건당 인센티브를 받으며 지표지옥에 허덕인다.

원청 대기업들은 반노동적인 지표를 고수·강화하고 있다. 원청이 하청에게 ‘재계약해서 계속 먹고살려면 기사들을 쥐어짜라’고 지시하는 셈이다. 기업이 고객에게 ‘노동자에게 갑질해도 괜찮아’라고 이야기하는 꼴이다. 이런 지표지옥에서 노동자가 안전하게, 그리고 적정하게 일할 권리는 없다. 노동자가 행복하지 않으니 고객의 가슴도 답답하다. 해피콜로 행복한 사람은 없다.

고객 동지 여러분, 해피콜이 오면 이렇게 대응해 달라.

“노동자 피 말리는 해피콜은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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