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영수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조직부장(사진 오른쪽)과 이성호 대의원(사진 왼쪽)은 노조할 권리 보장과 블랙리스트 폐기를 요구하며 지난달 11일부터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 민주노총 투쟁사업장 노동자 6명은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 광고탑에 올라 단식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사진 속 앉은 순서대로 김경래·김혜진·장재영(검은 옷)·오수일·이인근(파란 옷)·고진수씨다. 김경래 민주노총 동양시멘트지부 부지부장

노조탄압 중단과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며 '하늘집'에 오른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이 기약 없이 길어지고 있다. 이들은 "정리해고와 노조할 권리 보장 문제가 사회적 의제가 될 때까지 싸우겠다"며 각계각층에 연대를 호소했다.

3일 민주노총에 따르면 지난달 11일 울산 동구 염포산터널 고가다리 교각에 오른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업체 해고노동자 2명이 이날로 23일째 고공농성 중이다. 같은달 14일에는 민주노총 투쟁사업장 6곳 노동자 6명이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 광고탑에서 단식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이날로 20일째다.

농성 중인 노동자들은 이날 <매일노동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처음 농성을 시작하며 밝혔던 요구사항이 해결되지 않으면 계속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울산에서 농성하는 노동자는 광화문 농성 노동자에게, 광화문 노동자는 울산 노동자에게 "희망을 만들어 가는 싸움에서 승리해 떳떳하게 땅을 밟자"고 격려했다.

구조조정 직격탄 맞은 하청노동자
"노조활동 했다는 이유로 탄압"


정부가 조선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조선소 노동자는 최근 2년째 고용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구조조정 파도에 가장 먼저, 가장 많이 휩쓸린 이들은 하청노동자들이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지난해 7월부터 지회 주요 간부 중 80%가 업체폐업 등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지회는 "원청이 지회 간부 재취업을 막는 식으로 노조파괴에 나서고 있다"고 반발했다.

현대미포조선 ㄷ하청업체에 다니던 전영수 지회 조직부장과 이성호 대의원은 지난달 9일 업체폐업으로 해고됐다. 채용공고를 낸 하청업체 수십 곳에서 번번이 탈락한 두 해고노동자는 지난달 11일 하늘집으로 올랐다.

전영수 부장은 이날 전화통화에서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 원청은 흑자를 내면서도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하청노동자들을 대량해고로 내몰고 있다"며 "하청노동자들이 만든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해 블랙리스트를 가동하는 행태가 개선될 때까지 이곳에서 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성호 대의원은 "원청 정규직들은 쉬고, 값싸게 부릴 수 있는 하청노동자들만 일을 시키는 과정에서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가 발생했다"며 "일하다 다치고, 죽고, 큰 목소리를 내면 갖가지 불이익을 당하는 하청노동자들에 비하면 우리 투쟁은 아무 일도 아니다"고 말했다.

"정리해고·비정규직 투쟁 전면에 나서 달라"

지난달 14일 광화문광장 인근 광고탑에 오른 노동자 6명은 소속 사업장도, 하는 일도 다르다. 그런데 공통점이 하나 있다. '악성 사용자'를 상대로 노동 3권 보장과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경래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노조 동양시멘트지부 부지부장·고진수 세종호텔노조 조합원·오수일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대의원·이인근 금속노조 콜텍지회장·김혜진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민주노조사수 투쟁위원회 대표·장재영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울산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이 주인공이다.

김혜진 대표는 "일상적 구조조정으로 거리로 쫓겨나고, 비정규직은 무한증식되고, 인간답게 살아 보겠다고 노조를 만들면 탄압받는 현실에서 노동 3권이 유린되고 있다"며 "새 정부가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국회가 정리해고제 같은 노동악법을 폐기하도록 만들려면 대선 국면에서 싸워야 한다는 생각에 농성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자본과 정권에 맞서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올라왔지만 우리가 싸워야만 노동해방이 가능하다는 말을 노동운동 내부에도 하고 싶었다"며 "열사투쟁과 비정규직 철폐투쟁 과제를 민주노총이 전면에 내세울 때 땅으로 내려가 어깨 겯고 같이 싸우겠다"고 말했다.

고진수 조합원은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긴 투쟁이 되면 상급단체 지원도 줄고 결국 투쟁 당사자 몫으로 싸움이 남겨지는 모습이 너무나 답답했다"며 "추상같던 권력을 끌어내린 민중의 힘을 바탕으로 노동의제를 전면에 내걸고 노동자들이 다함께 싸우는 마중물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광화문 광고탑 농성자들은 단식이 길어지면서 저혈압·저혈당·수분섭취 부족으로 건강 이상증세를 호소하고 있다. 머리를 내밀어 전광판 아래를 보려면 2미터 높이의 철제구조물을 딛고 올라서야 하는데, 최근에는 근력이 떨어져 이마저도 힘든 실정이다.

그럼에도 울산과 광화문 고공농성자들은 서로의 건강을 빌었다. 전영수 부장은 "힘든 결정을 하고 투쟁하는 여섯 동지들이 정말 존경스럽고 자랑스럽다"며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이기고, 건강하고 떳떳하게 땅으로 내려가자"고 응원했다.

김혜진 대표는 "노동 3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노조파괴에 맞서 싸운다는 점에서 울산의 동지들과 우리는 같은 투쟁을 하고 있다"며 "승리의 희망을 만들어 나가는 싸움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용기를 잃지 말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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