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발전하려면 90%의 중소·영세·미조직 노동자를 보호하는 한국형 노동회의소를 시스템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문재인 후보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시스템에 의해 노사관계 변화를 주도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노동이 성공하면 대통령도 성공한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용득(64·사진)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을 만났다. 이용득 고문은 한국노총 위원장 시절인 2011년 12월 옛 민주당과 시민통합당·한국노총을 통합해 민주통합당을 출범시키는 과정에서 산파 역할을 했다. 그로부터 4년간 노동담당 최고위원과 당 전국노동위원장을 지냈다. 지난해 20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 문재인 후보와의 인연을 말해 달라.

“노무현 국회의원 시절 한두 번 만났던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은 의원 시절에 금융노조에 자주 왔다. 문 후보가 청와대에 있을 때가 기억난다. 한국노총 위원장이었을 때 노동현안을 가지고 만났다. 그러고는 2012년 대선에서 선거캠프 노동위원장을 맡으면서 인연이 이어졌다. 문 후보가 당대표를 하던 시절에 최고위원을 하며 1년을 동고동락했다.”

“문재인은 노동을 잘 아는 착한 사람”

- 4년 만에 다시 문 후보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는데.

“문 후보는 첫인상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착한 사람’이다. 내가 착한 사람에게 좀 약하다(하하). 4년간 최고위원을 하며 여러 당대표와 함께해 봤다. 문 대표는 워낙 심성이 착한 사람이라서 자기방어를 강력하게 안 하는 사람이다. 노동에 대해 열려 있고 따뜻한 마음이 있기에 늘 듬직하게 느껴진다.

요새는 여론조사 결과가 안정적으로 나오니까 다행이다 싶다가도 사실 불안하기도 하다. 4년 전에도 분위기가 좋지 않았나. 막판에 너무 충격적으로 실패한 경험이 떠오른다. 이번에는 실패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용득 고문은 4년간 최고위원을 했다. 당시 안철수 대표에 대한 인상을 떠올렸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김한길 전 의원과 함께 2014년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안철수 후보도 최고위원으로 있을 때 함께 활동했다. 그런데 안 대표와는 노동문제로 단 1분도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다. 노동문제는 김한길 대표에게 밀어 버리더라. 노동현안이나 노동계 건의사항을 놓고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노동에 무관심한 사람이다.”

- 문재인 후보를 평가한다면.

“문 후보는 과거 사법고시 차석을 했음에도 판검사를 하지 않고 노동변호사로 뛰어든 사람이다. 노무현 변호사마저 문 변호사 때문에 노동에 관심을 가졌다고 할 정도다. 이런 이력을 알고 있었기에 기본적으로 호감을 가졌다. 최고위원 시절 노동현안에 대해서는 항상 거침없이 서로 대화했다. 노동과 관련해서는 준비된 사람이다.”

비정규직 외면한 사내유보금 800조원은 ‘돌덩어리’

- 노동부문의 최대 적폐는 무엇인가.

“비정규직 양산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결국 사회안정을 해칠 수밖에 없다. 비정규 노동자가 촛불 국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우리는 빠르게 산업사회를 구축하면서 세계 경제규모 10위권까지 왔다. 그러나 부와 기술을 분배하지 못했다. 대기업 원청이 기술을 독점하고 하청의 기술을 빼앗아 간다. 재벌 대기업은 800조원의 사내유보금을 쌓아 놓고 있다. 이 중 절반인 400조원만 비정규직·소외계층·청년실업자를 위해 쓴다면 어떨까. 400조원은 화폐가치로 볼 때 4천조원 가치창출로 이어진다. 그냥 쌓아만 두는 800조원은 돌덩어리일 뿐이다. 1원의 가치도 없다. 이런 것이 적폐 중 적폐다.”

- 문 후보 공약 중 내세우고 싶은 것은.

“한국형 노동회의소라고 말하겠다.”



문재인 후보는 27일까지 노동공약을 발표하지 않았다. 노동절을 앞둔 28일 한국형 노동회의소를 포함한 노동공약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형 노동회의소는 90%의 중소·영세·미조직 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해 다양한 지원을 하는 기구로 규정돼 있다.

90% 미조직 노동자 지원하는 노동회의소

- 어떤 점에서 그런가.

“90%의 중소·영세·미조직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조직은 노동회의소밖에 없다. 역대 정부의 노동부문 정책을 들여다보자.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사정 3자 기구인 노사정위원회를 만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부가 빠진 노사 2자만의 민간기구인 노사발전재단을 시도했다.

노사정위는 정부의 들러리 기구가 돼 버렸고, 노사발전재단은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으로 전락했다. 두 실험 모두 실패했지만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시스템으로 변화를 시도한 대통령으로 기억된다. 문재인 후보는 노동회의소라는 노사 민간기구를 시스템으로 만드는 세 번째 대통령이 될 것이다. 노동회의소는 정부가 참여하지 않은 가운데 노사 2자 기구로 성공해야 한다. 삼세 번이라는 속된 표현도 있다. 세 번째인 만큼 문재인은 성공해야 한다.

전제조건은 정부가 배제돼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반드시 성공한다. 5년은 짧다. 노사관계를 변화시키려면 장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노동회의소를 시스템화해서 문재인 정권이 끝난 뒤에도 계속 유지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고문은 “대한민국은 사회적 대화가 없는 국가”라고 꼬집었다.

“대한민국은 코미디 국가다. 글로벌 스탠더드 입장에서 볼 때 노사관계가 없다. 그런데 정치인 대부분이 노사관계를 말한다. 내가 한국노총 위원장을 세 번 했지만 사용자대표를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고 그런 대화틀도 없다. 그런데 무슨 노사관계인가.”

- 노동회의소 설립이 4차 산업혁명과 관련이 있나.

“모두들 4차 산업혁명을 말한다. 불확실성의 시대다. 그런데 누가 대비하고 있나. 독일에서는 노총과 경총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백서들을 내놓는다. 중앙노사관계에서는 노사가 공동으로 산업현장 불확실성에 대비할 수 있다. 우리는 노사는 물론 정부도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사회 주체인 노동자들이 모든 면에서 배제돼 있다. 노동자를 산업사회 주체가 아닌 종속적 관계로 보고 있다.”

"문재인 후보 선택한 한국노총 5·9 축제 열자"

- 당 선대위 상임고문으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선대위 노동위원회에 참여하지 않고 혼자 활동하는데. 힘들지 않나.

“전혀 어렵지 않다. 1명이 다니든 10명이 다니든 결국 노조간부와 조합원들이 모여야 한다. 한국노총 위원장을 세 번 한 경험 때문인지 양대 노총 사업장 모두 다니는 데 어려움이 없다. 얼마 전에는 철도노조 사업장이 있는 경북 영주에 다녀왔다. 철도노조 영주지방본부와 간담회를 하는데 전 간부가 함께해 줬다. 이번 대선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영주는 경북에서도 야당세가 강한 곳이다. 촛불집회에도 1천~2천명이 모였다고 한다. 철도노조 영향 때문인 것 같다.”

- 지역 순회강연을 하고 있는데 노동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적폐청산 요구가 높다. 현장 열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전국 어디를 가나 노조간부와 조합원들이 ‘이제는 바꿔야죠’라고 말한다. 지역 차이를 못 느낄 정도다.

4년 전 대선 때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순회강연 90분 강의시간 내내 이석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200~300석 규모의 좌석이 모자란다. 초롱초롱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강의가 끝난 뒤 질문시간에는 시니컬한 반응보다는 ‘충분히 이해했다’며 격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그러니 신날 수밖에.”



한국노총은 이달 10~25일 지지후보 결정을 위한 조합원 총투표를 했다. 27일 "문재인 후보가 지지후보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이 고문 인터뷰는 하루 전날 이뤄졌다.

- 조합원 총투표 기간이 길었다. 안철수 후보 지지율이 상승하던 초반에는 걱정이 많았을 것 같은데.

“사실 초반에는 약간 걱정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촛불혁명에 따른 것 아닌가. 소외받고 차별받는 노동자가 촛불혁명의 동력이다. 그렇기에 총투표 결과 문재인 후보가 지지후보로 결정될 것이라고 100% 확신했다. 한국노총이 5·9 대선일까지 견인하는 역할을 해 주길 바란다. 대선 당일 승리한 문재인 후보와 함께 한국노총 축제의 날을 만들자.”



글=연윤정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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