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동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4월과 5월은 한반도 전역의 산지를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와 산철쭉의 계절이다. 핏빛 나는 진달래와 산철쭉이 지천으로 피는 이 땅의 봄은 역사적 진통이 엄청났던 계절 아니던가. 대선일 확정 전에 벚꽃과 장미가 경합하다 후자로 널리 불리는 5·9 대선일. 진보나 노동의 결정력과 무관하게 잘만 다가오는 장미대선. 혹시 장밋빛 환상을 심어 주고 싶어서였나. 성난 민심을 달래고 싶어서였나. 근데 붉은 장미는 세계적으로 진보정당들의 상징인데. 유럽에서 노동운동에 기반을 둔 정당들이 당선자에게 장미를 건네던데.

현실은 산천에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는 계절에 거리 곳곳에서 노숙과 고공농성을 하는 노동자들. 그 좋다는 장미대선의 계절에 노조파괴 사업장 노동자는 목숨을 던지고.

박근혜가 당선되면서 최강서·이운남 등 노동자들의 슬픈 죽음이 연이었다. 이제 박근혜가 없는 봄이 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장밋빛 공약이 선정적으로 뿌려지는 봄날에 노조파괴 사업장 갑을오토텍 노동자 김종중은 지난 18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신의 SNS에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살자고 노력했습니다”는 글을 남겼다.

고인은 1972년에 태어났고 94년 갑을오토텍에 입사한 노조원이다. 갑을오토텍은 대표적인 노조파괴 사업장이다. 2015년 6월 용역폭력 사태가 발생했고 2016년 7월 직장폐쇄가 단행됐다. 김종중은 그 과정을 다른 조합원들과 함께 온몸으로 견뎌야 했다. 스스로 삶의 끈을 놓은 그의 고통을 어찌 필설로 헤아릴 수 있겠는가.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는 이재헌 지회장 명의 입장문을 냈다. 이 지회장은 "살인적으로 장기화된 불법 직장폐쇄와 3년에 걸친 노조파괴가 죽음에 이르게 만든 원인"이라며 "직장폐쇄 8개월 동안 경제적 어려움과 심리적 압박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어 "언제 끝날지 모를 절망의 고통이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했다"며 "불법적으로 직장을 폐쇄한 갑을 경영진의 책임이 막중하다"고 강조했다.

이 지회장은 입장문에서 “2015년부터 경영진이 노조파괴와 공격적 직장폐쇄를 자행하는 동안에도 노조와 동료들 곁에 늘 함께 있었다”고 애도했다. 조합원들에게는 “동료의 죽음에 상실감과 분노가 클 것이다. 하지만 고 김종중 동지를 잘 보내 드리기 위한 투쟁으로 이런 마음을 승화시키자”고 당부했다.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갑을오토텍지회는 조합원 동지들 모두가 건강하게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희망과 꽃잎이 덧없이 날리는 봄날 노조파괴 사업장 노동자의 죽음과 마주했다. 불과 한 달여 전 353일의 최장기 열사투쟁 끝에 안장된 한광호 묘소의 잔디가 착근도 하기 전이다. 한광호는 2011년 5월18일 용역깡패를 앞세운 유성기업의 직장폐쇄 이후 노조파괴 대응투쟁 과정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짧지만 치열했던 삶을 살다 지난해 3월17일 이승을 떠났다. 죽어서도 안식을 못하고 냉동고에 일 년 가까이 안치됐다. 원통한 죽음 후 노조파괴 책임자 유시영 회장은 유죄가 선고돼 법정 구속됐다. 올해 3월4일 한광호의 장례식에 바친 송경동의 시 중 일부를 소개한다.

"저 하늘에 가서는/ 더 이상 부당한 까닭으로 해고를 당하고/ 징계받아야 할 자들에게 도리어 징계를 받고/ 시시때때로 경찰에 끌려가 조사받고/ 또 종일을 CC카메라 앞에서 사찰받지 않아도 되기를/ 제2노조 제3노조 영혼까지 매수당한/ 구사대 동료들 앞에서 더 이상/ 까마득한 절망과 분노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기를/ 정당한 조사와 판결을 미루고/ 6년 동안 뺑뺑이를 돌리던 검찰과 법원 앞에서/속이 꺼멓게 타들어가지 않아도 되기를/ 거덜 난 통장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 앞에서/ 서러운 눈물 흘리지 않아도 되기를."

처절했던 한광호의 뒤를 이은 노조파괴 사업장 갑을오토텍 김종중의 생때같은 목숨은 노조파괴 없는 세상,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향한 피맺힌 열망의 다른 이름이다.

한광호와 김종중. 그들이 외쳤던 해고자의 좌절, 비정규직의 눈물, 노조탄압과 영혼파괴 없는 세상. 그런 세상의 도래가 이리도 어렵단 말인가.

화려한 공약의 이면을 읽고 있는, 곧 파기될 헛된 약속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 보는 노동자들은 그래도 꿈꾼다. 노동자가 당당한 세상. 노동이 고귀하고 아름다운 이름이 되는 세상. 엄마 아빠의 직업란에 자랑스럽게 ‘노동자‘로 기재할 수 있는 세상. 산천에 흐드러지게 피는 진달래와 산철쭉의 계절에, 장미대선으로 불리는 정치의 계절에, 김종중이 목놓아 부르며 꿈꿨던 세상. 이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꼭 만들어야 할 그런 세상.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hdlee20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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