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장준 희망연대노동조합 정책국장

고3 현장실습생 홍수연양이 콜수 압박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통신과 케이블방송 업계는 ‘실적’이라는 말로 노동을 수치화해 실시간으로 기록한다. 회사는 이 지표를 기준으로 노동자들을 등급화하고 노동을 쥐어짜는 도구로 사용한다. “아빠, 나 콜수 못 채웠어”라는 홍양의 문자는 지표에 노동을 저당 잡힌 우리 시대 노동자들의 힘겨운 사투를 보여 준다. 희망연대노조가 ‘지표지옥’에서 비용절감과 실적압박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4회에 걸쳐 전한다.<편집자>


“친절하고 정확하고 신속하게 응대하라!”

어떤 기업이라도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여기에 토를 다는 노동자는 없다. 새로 온 고객을 안내하고 떠나려는 고객을 붙잡고 이름 모를 고객에게 상품을 팔아야 하는 콜센터 노동자라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것이다.

회사가 상담사의 친절도·정확도·신속성을 올리기 위해 이렇게 한다면 어떨까. 우선 관리자가 상담사 통화내용을 듣고 ‘적극성’이 없다고 평가하면 전체 평가에서 0점을 매긴다. 이어 하루 33콜 미만의 전화를 받으면 실적급 평가에 감점을 준다. 끝으로 친절도를 높이기 위해 빽빽이(깜지)를 쓰게 한다.

실제 있는 일이다. 2014년 10월 전주 LG유플러스고객센터 민원팀장으로 일했던 서른 살 청년노동자 이문수씨는 “회사는 거대한 사기꾼 같다”는 유서를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올해 1월 같은 센터 해지방어부서(세이브팀)에서 일한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홍수연양은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모두 과도한 업무스트레스 탓이었다.

▲ LG유플러스고객센터가 상담사들의 콜을 평가하는 기준. LG유플러스 현장실습생 사망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LG유플러스고객센터는 상담사들에게 고객상담과 상품판매를 동시에 시켰다.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7개월차 134만5천원)을 지급하면서 상담업무 실적을 10등급으로 나누고, 상품판매 실적으로 상담사들을 줄 세워 인센티브를 차등해 지급했다. “네가 일한 만큼 벌어 갈 수 있다”며 노동자들을 ‘근로자영자’로 만든 것이다.

'센터장→실장→팀장→상담사'로 이어지는 다단계 영업조직 안에서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소모’됐다. 서울과 전주에 있는 LG유플러스고객센터의 평균 근속연수는 각각 0.81년과 0.86년에 불과했다. LG유플러스와 총수 일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담사들을 일회용품처럼 쓰고 버렸다. 이문수·홍수연 두 사람이 ‘나약’해서가 아니다.

인바운드(고객센터 대표번호로 걸려오는 전화)와 아웃바운드(고객센터가 상품판매 등을 위해 고객에게 직접 거는 전화)를 교묘하게 뒤섞고, 일일·주간·월간 단위로 실적을 경쟁시키는 것은 LG유플러스만이 아니다. 한 시간(또는 하루) 단위로 콜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임금에 반영했다. 대기·처리·후처리·휴식시간을 초 단위로 관리하는 것이 방송통신업계 콜센터들이다.

원청 기업이 콜센터를, 콜센터 관리자가 상담사들을 평가하는 ‘지표’는 보통 고객응대율, 평균 통화시간, 평균후처리시간, 시간당 평균 콜수(Call Per Hour), 하루 평균 콜수(Call Per Day), 상품판매 건수, 통화품질 등으로 구성된다.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고 퇴근시간 뒤에 남아 전화를 돌려야 하는 것도 이 같은 평가기준 때문이다.

LG유플러스고객센터 세이브팀의 경우 월별로 콜수 가·감점 기준을 세우고 이에 미달한 상담사들에게 감점을 줬다. 고 홍수연양의 문자메시지(“아빠, 나 콜수 못 채웠어”)는 감점당하지 않기 위해 야근을 한다는 뜻이었다. 190초 안에 전화를 끊고 140초 안에 후처리를 하고 시간당 7.5콜 이상을 소화해야 하는 콜센터도 있다.

유료방송과 통신사업장 콜센터에서는 이 같은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상담사만 2만3천여명에 이른다. 공공기관과 보험·금융·카드, 유통업계 등 전체 콜센터 상담사는 40만~50만명으로 추산된다. 대다수 상담사는 오늘도 초 단위 노무관리와 실적 압박에 시달리며 욕받이 노릇을 한다.

지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케이블방송사인 딜라이브의 고객센터인 텔레웍스, 120다산콜센터에서 노조 설립 뒤 노동인권을 침해하는 지표들이 사라졌다. 각종 지표와 임금의 연결고리를 끊어 낸 결과다.

그러나 대다수 기업은 고객상담과 상품판매 업무를 외주화하고, 근로자영자 임금체계를 악용해 노동자들을 개개인으로 갈라서게 했다. 이런 까닭에 최소한의 견제장치가 있는 콜센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기업은 사용자 책임을 외면한 채 노동자들의 감정을 소모하며 실적을 압박한다.

가입자 뺏기와 유통 단위 경쟁이 심해지면서 기업이 콜센터와 상담사들에게 가하는 실적압박이 거세다. 상담사들이 감내해야 하는 감정노동과 영업압박의 강도가 높아지는 추세다. 우리는 또 다른 비극을 목전에 두고 있다. 실제 사용자인 기업과 관리감독 주체인 정부가 책임지고 나서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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