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지난해 말부터 올해 3월까지 진행된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 임원선거를 지켜본 조합원들의 반응이라고 한다. 5개월에 걸쳐 선거관리위원회의 당선 무효와 재선거 후보등록 무효, 법원의 가처분신청 인용에 따른 후보 재등록, 당선까지 유례없는 사건이 연달아 벌어졌다.

온갖 파고를 넘어 당선한 박홍배(45·사진) 지부 위원장이 내건 공약은 특별하지 않다. 성과연봉제 저지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진정성이다. 그가 겪은 고난은 조합원들에게 남다른 기대감을 품게 했다. 출마자가 11명에서 5명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박홍배 후보의 특표율은 1차 선거 13.8%에서 2차 선거 57%로 껑충 뛰었다. 조합원들의 기대는 역설적이게도 그의 당선을 막아선 사람들의 우려가 현실화하는 일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여의도본점 지부 사무실에서 박 위원장을 만났다.

- 어렵게 위원장에 취임했다. 소감이 어떤가.

“조합원들이 어느 때보다 노조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선거에서 사측이 너무 힘들게 하니까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을 것이다. 두려움을 딛고 표를 줬다. 어깨가 무겁다. 조합원들은 서둘러 현안을 해결해 주길 바란다. 현안 해결에 주력하겠지만 단기 사업이나 보여 주기 식 사업에는 중점을 두지 않으려 한다.”

- 최근 노사협의회를 시작으로 공식 활동에 들어갔는데.

“지난해 희망퇴직으로 2천800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영업점 평균 1~2명씩 줄어든 반면 노동시간은 평균 2~3시간 늘어났다. 지부는 노사협의회에서 추가근로수당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유연근무제도 쟁점이다. 말이 좋아 육아에 도움을 주는 제도지, 실제로는 영업시간을 늘려 수익을 높이려는 목표 때문에 노동시간만 증가했다. 사측도 문제점을 알고 있다.

직원 공청회 등을 통해 대안을 찾겠다. 전체적으로 유연근무제 시행대상 점포를 축소하는 게 맞다.”

- 과당경쟁 해소방안은 뭔가.

“다음달 분회를 순방한다. 기존 합의에 반해 프로모션이 이뤄지는지 파악할 것이다. KB국민은행에는 '릴레이'와 '올투게더'라는 영업문화가 있다. 특정 금융상품을 일정 기간 동안 무조건 팔고, 지점장을 제외한 전원이 하루 하나 이상의 상품을 팔라는 거다. 이러니 자기 돈을 들이거나 친인척을 동원하는 '자폭'이 생긴다. 지난해 지역본부를 지역영업그룹과 산하 파트너십그룹 체제로 개편한 뒤 영업압박이 심해지고 있다. 영업본부에 프로모션 횟수를 연 6회로 한정하는 단체협약이 있었는데, 파트너십그룹이 생기면서 초과 프로모션을 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실태 파악 후 대응책을 마련하겠다.
얼마 전 몸담았던 영업점을 방문했다. 동료에게 나흘 중 이틀간 점심을 못 먹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은행원들은 순서를 정해 20~30분 점심을 먹는다. '점심시간을 보장해 달라'고 하면 '다른 은행에 고객을 뺏긴다'는 말이 돌아온다. 다른 은행지부 대표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산별노조 차원의 대책 마련을 건의할 예정이다.”

-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은행장의 임기가 올해 11월까지다.

“쥐어짜기 식 경영은 한계를 맞았다. 경영자의 역할은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일하도록 사기를 진작하는 데 있다. 권위주의 문화는 수동적인 직원을 만든다. 직원들이 은행을 사랑해야 능동적으로 일한다. 윤 회장이 연임을 하든, 다른 경영진이 오든 은행과 고객을 위해 직원들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 임기 동안 최우선 과제는 뭔가. 조합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노조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져 있다. 조합비가 소수를 위해 쓰인다는 비판이 많았다. 투명한 회계감사로 신뢰를 회복할 것이다. 조합원들의 노동이 존중받는 문화를 만들겠다. 자신들이 고객에게도 이로운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갖도록 하겠다. 새 집행부에 개혁을 기대한다는 것을 잘 안다. 노사가 마주 앉아 논의하고 대립하는 과정에서 변화가 만들어진다. 기다려 달라. 반드시 약속을 지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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