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병욱 변호사(법무법인 송경)

1970년 11월13일 청년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만 스물 둘의 삶을 마감했다.

청년 전태일의 죽음 이후 거의 반세기에 이를 즈음인 2016년 10월26일 거대 미디어콘텐츠그룹 CJ E&M의 신입 조연출 PD인 청년 이한빛은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이 농담 반 진담 반 건네는 '노동착취'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 팠어요. 물론 나도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네들 앞에선 노동자를 쥐어짜는 관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 가긴 어려웠어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만 스물 일곱의 삶을 마감했다.

46년이다.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뀌고 다시 6년이 더 흘렀건만, 우리네 살아가는 노동의 현장은 1970년이나 2016년이나, 2017년이나 바뀐 게 없다. 여전히 근로기준법은 지켜지지 않고, 노동자들은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며, 일요일은 없다.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의 조사 결과 이한빛 PD는 장시간 노동과 과중한 업무 부여, 모욕 등을 겪었다. 그의 휴대전화는 55일 동안 발신통화 건수만 1천547건이었고, 하루 최대 94건이 발신됐다. 촬영이 새벽 2~3시에 끝나도 새벽 7시에 집합하는 일이 계속됐다. 현장에 나오지 않는 날에는 사무실에서 내근을 했다. 그룹 메신저방에서는 이한빛 PD를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드라마 제작현장을 통해 "원래 이 바닥이 그렇다"거나 "막내들은 그런 일 다 한다"며 결과만을 추구해 온 소위 ‘헬조선’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한빛 PD는 대학 시절부터 비정규 노동자나 사회적 약자의 현실에 고민했다. 자신이 CJ E&M으로부터 받은 월급 대부분을 세월호 연대조직과 KTX 승무원, 기륭전자, 빈곤연대, 사회진보연대에 기부할 정도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힘들어했다.

대책위원회가 조사보고서를 발표한 직후부터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서 쏟아지는 추모와 애도의 글들은 이한빛 PD가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했으며 누구보다 사람을 배려하고 타인의 슬픔에 아파했다는 방증이다. 근무태도가 불량했다는 CJ E&M측 자체 조사 결과는 믿기 어렵다.

장시간 노동으로, 과중한 업무로, 다른 스태프들이 해야 할 일을 자신이 함으로써 고된 일에 지치고 힘들어했던, 그래서 몇 분 정도 지각하고,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날에 출근했던, 신입 막내 이한빛 PD는 자신의 여린 감수성과 책임감 때문에 결국 마지막까지 '내'가 착취당한 것 때문이 아니라 '남'을 착취했다며 괴로워했다.

청년 이한빛이 경멸했던 '노동착취'는 청년 전태일의 사망 후 46년이나 지난 헬조선 도처에 만연해 있다. 청년 이한빛의 사망으로부터 46년 후엔 적어도 '노동착취'라는 단어 정도는 없어져 있길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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