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건설노조 소속 건설기계노동자들이 노동기본권 보장 등을 촉구하며 13일 오후 국회 앞에서 총파업 투쟁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덤프트럭 기사 서충원(44)씨는 주변에서 "덤프를 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말리고 본다. 평생 마이너스 인생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 역시 덤프 경력 15년에 빚만 5천만원이 넘는다.

"일을 진짜 많이 하는 사람이 한 달에 1천800만원에서 2천만원 정도 벌어요. 주변에서는 큰 덩어리(액수)만 보고 덤프하겠다고 덤벼드는데, 완전 허수예요. 버는 돈의 절반은 기름값으로 들어가고 타이어·보험료에 차 할부금이 400만원씩 들어가요. 그러면 생활비는 150만~200만원밖에 가져가지 못합니다."

서씨에 따르면 25톤 덤프트럭 기준 타이어값만 한 해 800만원씩 든다. 보험료는 600만원, 사고라도 나면 800만~1천만원으로 뛰는 건 금방이다. 건설경기 불황으로 일감은 적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운송료 덤핑에도 시달린다. 그가 다달이 월급을 받는 직장인들을 부러워하는 이유다.

거제에서 레미콘 기사로 일하는 윤주봉(62)씨는 20년 전만 해도 덤프트럭을 몰았다. 그런데 현장 안전사고로 하루아침에 신용불량자가 됐다. 보험사에서 그에게 구상권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아이들 피아노까지 빨간딱지가 붙었다. 신용불량자라서 아내 이름으로 레미콘 사업자등록증을 받았다. 윤씨는 "잘못해서 사고라도 나면 아내까지 망할까 봐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박석규 충남건설기계지부장은 "건설기계노동자들 중 신용불량자가 많아 사업자등록증을 부인이나 딸, 아들 앞으로 받는 사람이 태반"이라며 "언제쯤 건설기계노동자들도 사람답게 살 수 있냐"고 반문했다.

◇"사장 아닌 노동자"=건설기계노동자들이 노동기본권 쟁취와 산재보험 적용, 구상권 폐지, 퇴직공제부금 당연적용을 요구하며 13일 하루 파업에 나섰다. 건설노조 건설기계분과위원회 조합원인 덤프트럭·굴삭기·레미콘·펌프카 노동자 1만명은 이날 일손을 놓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상경집회를 했다.

건설기계노동자들은 특수고용 노동자다. 사업자등록증을 가지고 자기 소유 건설기계를 갖고 있어 개인사업자로 분류된다. 전문건설업체와 맺은 도급계약에 따라 운송료 혹은 임대료를 받는다.

현장에서는 업체 관리자들로부터 작업지시를 받고 일하는데,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다 보니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사고가 나거나 임금이 체불돼도 본인이 감당해야 한다. 임금체불에 집단적으로 항의라도 하면 '공갈·협박범'으로 내몰려 업체로부터 소송을 당하기도 한다.

건설기계 중 레미콘 노동자들은 산재보험 적용이라도 받지만, 나머지 26개 건설기종은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한다.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업무 중 사고가 일어나면 사고를 당한 다른 사람에게 지급하는 보험급여 비용까지 떠안는다. 근로복지공단과 민간보험사들이 구상권을 청구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퇴직금도 없다. 철근·목수 같은 건설일용직들은 하루 일한 만큼 원청이 퇴직공제부금을 납부하도록 돼 있다. 반면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사업자등록증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각종 사회보험에서 제외된다. 건설기계노동자들은 "매일 현금으로 일당을 받고 퇴직금도 받는 목수들이 부럽다"고 입을 모은다.

◇"노동기본권 보장해 줄 사람 뽑겠다"=국회에는 노동자 개념에 특수고용 노동자를 포함시키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과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을 전면 적용하고, 건설기계에 대한 구상권 적용을 제외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건설근로자공제 가입범위를 확대해 건설기계노동자도 퇴직공제부금을 적용받을 수 있는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건설근로자법) 개정안도 발의돼 있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문재인(더불어민주당)·유승민(바른정당)·심상정(정의당)·김선동(민중연합당) 후보가 건설기계 관련 건설노조의 요구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만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의견수렴 후 추진하겠다"는 '검토' 의견을 보냈다. 이날 집회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한목소리로 "립서비스가 아니라 진짜로 노동기본권을 보장해 줄 사람에게 표를 주겠다"고 외쳤다.

이달 3일부터 국회 앞에서 노숙농성 중인 이영철 노조 건설기계분과위원장은 "많은 국회의원과 정치인들이 농성장을 다녀갔다"며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이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앞으로 두고 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대선이 지나고 나서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 요구를 무시한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