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세희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A씨는 지역 한 방송사의 유능한 아나운서였다. 수습기간을 마치고 정규직이 됐고 본인이 꿈꾸던 직업을 갖게 된 것을 행운으로 여기며 최선을 다해 일했다. 회사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루 5차례 이상의 뉴스와 1시간가량의 음악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공개방송 MC까지 맡는 등 회사를 대표하는 아나운서가 됐다.

그러다 그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게 됐고, 출산을 하고 법이 보장하는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회사 사정상 육아휴직을 조기 종료하고 복귀해 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당장 애기를 봐줄 사람도 없고 사정상 그건 곤란하다고 완곡한 거절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회사에서 또다시 사람이 찾아왔다. 회사는 이번에는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전환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 아나운서지 프리랜서 아나운서가 된다는 건 결국 회사를 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또다시 완곡히 거절했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가 다시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다.

육아휴직에서 복귀했다. 비록 법상 보장된 권리를 누리는 것이었지만 육아휴직 기간 동안 본인 업무까지 과중한 업무를 담당했을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대신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열심히 일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회사는 그에게 아무런 일도 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업무에 적응할 시간을 주려는 회사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달이 되도록 일다운 일을 부여받지 못했다. 참다못한 그는 자신이 왜 업무에서 배제되고 있는지 물었다. 회사 답변은 예상 밖이었다. “회사의 육아휴직 조기복귀 제안을 거절하고, 프리랜서 아나운서 전환도 거절해 놓고 자기 마음대로 육아휴직 쓰고 누릴 건 다 누리고 돌아와서 일을 달라고 하면 회사가 당연히 일을 줘야 하는 것이냐”는 얘기였다. 업무배제는 1년의 육아휴직을 다 쓴 데 대한 보복적 조치였다.

A씨는 회사의 부당함에 저항했고, 그런 그에 대해 회사는 징계위원회를 열고 주의각서 징계조치를 했다. “회사가 의도적으로 자신을 업무에서 배제하고 있다는 거짓말로 동료들을 부추겨 조직질서를 문란하게 했다”는 이유였다. 이런 지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가 사실상 반성문에 다름없는 주의각서 작성을 거부하자 회사는 대기발령했고, 마침내 해고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가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휴직을 신청하는 경우 이를 허용해야 하고(19조1항), 근로자는 1년 이내 범위에서 육아휴직을 사용 할 수 있고(19조2항), 사업주는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19조3항)고 규정하고 있다.

회사의 행위는 남녀고용평등법 19조3항을 정면으로 위배한 행위다. A씨는 부당함을 다투기 위해 부당해고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바야흐로 대선을 앞두고 육아휴직 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겠다는 공약을 1번으로 내놓은 후보를 비롯해 너나없이 공약을 쏟아 내고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할 A씨와 같은 근로자들에게 그들의 정책이 진정 힘이 돼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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