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부품회사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에서 일하던 비정규 노동자 140여명이 최근 한꺼번에 직장을 잃었다. 노동자들과 노동조건을 두고 협상하던 하청업체가 사업 포기를 선언하면서다. 노동자들은 노조를 무력화하려는 신종 수법이라고 의심한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처지는 만도헬라 노동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청소업체가 폐업하고 노조 조합원만 제외한 채 고용을 승계한다며 울분을 토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귀가 따갑도록 들리지만 보호대책은 좀처럼 마련되지 않는다. 무엇을 바꿔야 간접고용 폐해가 사라질까.


하청업체 뒤에 숨은 사용자 직접교섭 강제해야
배태민 금속노조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비정규직지회장

▲ 배태민 금속노조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비정규직지회장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하청업체에 소속됐지만 모든 업무는 원청 지시에 의해 이뤄졌다. 만도헬라가 라인별로 연간·월간·일간 생산계획을 세우고 생산량·가동시간·생산인원·근무시간을 결정했다. 원청 관리자가 현장에서 업무를 직접 지시하기도 한다. 시급 7천260원을 받으며 2주 간격으로 12시간 주야 맞교대로 일하고 있다. 원청이 주말특근을 강요하는 일도 잦다. 여가생활은커녕 쉴 틈도 없이 일만하며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두 하청업체 생산직 350여명 중 300여명이 지회에 가입했다. 불만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지회 설립 후 두 하청업체와 교섭을 시작하려 했더니 한 업체가 느닷없이 도급계약이 종료됐다며 문을 닫았다. 신규 하청업체는 근로계약서 내용 문제로 논의를 하려던 찰나에 사업포기를 선언하고 손을 털었다. 이들 하청업체들이 우리 노동조건 결정에 아무런 결정권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노동조건을 개선시키고자 비정규직들이 노조를 만들었는데 교섭할 상대방이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두 하청업체 중 한 곳과 교섭을 시작했지만 이것 역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 이 업체만 교섭이 타결될 경우, 하청업체가 다르다는 이유로 조합원들 사이의 노동조건에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

제일 좋은 것은 역시 원청이 우리와 직접 교섭을 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으면서도 하청업체 뒤에 숨어 있을 수 있도록 하는 법이 있다면 그건 악법이다.


20년째 반복된 고질적 문제, 원청 사용자성 인정으로 끝내자
손정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연구위원

▲ 손정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연구위원

사내하청 문제는 벌써 20년가량 반복돼 온 고질적인 문제지만 현행 법·제도로는 딱히 해결할 방안이 없다. 노조를 만들자 하청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해 노동자를 해고한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사태도 현행 법·제도 내에서는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고용노동부에 적극적인 행정조치를 요구해서 하청업체가 바뀌더라도 고용은 승계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일 방법일 정도다.

그렇기에 법·제도 개선이 절실하다. 만도헬라 사태에서도 나타났듯이 하청노동자는 하청이라는 이유만으로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의 사용자인 원청의 사용자성을 법·제도로 인정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노동기본권 보장은 요원한 일이다. 과거에도 이미 비슷한 일들이 여러 차례 일어났다. 최근 대통령선거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를 비롯한 일부 대선후보들이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법·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공약했다. 새 정권에서는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

노조 차원에서는 하청업체에만 맡겨서는 문제를 풀 수 없기 때문에 원청 노조에 연대를 요청하거나 산업 차원의 다층적 교섭으로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만도헬라 같은 경우는 금속노조 차원이나 노사가 참여하는 자동차부품사협의회를 구성해 원청과 협상을 시도해야 한다. 이 또한 쉽지는 않겠지만 법·제도 개선 없이는 선택할 카드가 그리 많지는 않아 보인다.


노동자 죽음으로 모는 현장엔 항상 간접고용이 있다
신철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정책기획국장

▲ 신철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정책기획국장

간접고용이라 쓰고 망국의 지름길이라 읽는다. 99%에게 도움이 안 되는 것이 간접고용이다. 이번 만도헬라가 하청업체를 바꾸면서 기존 노동자 전원을 해고한 것이 한 예다. 세월호 참사, 구의역 사고, 현대제철 노동자 사망사고 등 우리 사회 노동자들을 궁지로 몰고 심지어 죽음으로 모는 모든 현장에 항상 간접고용이 있었다.

인천공항공사는 공기업이다. 그런데 그 공기업이 전체 고용인원의 85%를 간접고용으로 사용한다. 한 해 1조원 이상 매출을 기록하면서도 비용절감을 이유로 환경미화 노동자를 해고하려고 계약인원을 줄였다. 새로 만들어질 제2터미널에서 일할 사람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정보를 공개하면서 타협해야 할 텐데 일단 지금 일하는 곳에서 해고하고 나서 ‘알아서’ 가라고 하고 있다.

모범이 돼야 할 공기업이 이 모양이니, 만도헬라 같은 사기업이야 오죽할까. 이 나라가 망한다면 간접고용 때문일 것이다. 일단 정부가 공공기관부터 간접고용을 없애야 한다. 법 개정을 통해 모든 민간부문도 간접고용을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택배노동자의 사용주는 대리점이 아닌 택배회사
김진일 택배연대노조 사무국장

▲ 김진일 택배연대노조 사무국장

택배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 신분이다. 택배회사와 직접 계약을 맺지 못하고 중간위탁업체인 대리점과 계약관계를 맺는다. 택배노동자는 택배회사의 업무지시와 관리감독을 받으며 배송한다. 사실상 택배회사와는 직접고용 관계다. 하지만 택배회사는 대리점을 핑계로 택배노동자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택배회사는 택배노동자가 노조활동을 하는 등 회사 눈 밖에 나는 행동을 하면 대리점을 앞세워 계약을 해지(해고)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CJ대한통운 용산지점 택배노동자들의 해고와 ‘블랙리스트 의혹’이다. 대리점 사장은 어느 날 갑자기 건강을 이유로 대리점을 폐점했다. 택배노동자들은 다시 일하고 싶었지만 ‘취업불가명단’에 올라 재취업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CJ대한통운은 ‘취업불가명단’에 대해 “대리점 사장이 알아서 한 것”이라며 모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택배회사는 물품 배송에 필요한 전산작업을 대리점에 떠넘긴다. 대리점 사장은 ‘대리점 수수료’ 명목으로 전산작업 비용을 택배노동자들에게 갈취한다. 대리점 사장 마음대로 수수료가 결정되다 보니 공제비율이 적게는 5%, 많게는 30%까지 육박한다.

택배노동자와 택배회사는 사실상 직접고용 관계인데도 대리점을 끼고 간접고용 관계를 유지하는 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택배회사는 택배노동자를 직접고용하고 사용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일 시킬 때는 직원처럼 부려 먹고, 책임질 일이 생기면 ‘개인사업자’라 외면하는 택배회사의 작태는 근절돼야 한다.


간접고용 노동자에게도 노조할 권리 보장하자
최재혁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팀장

▲ 최재혁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팀장

고용형태공시제에 따르면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는 지난해 3월31일 기준으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는 323명, 소속 외 근로자는 4명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감사보고서의 기업개황 자료에는 지난달 27일 기준 임직원수가 334명, 주주 2명이 공시돼 있다.

국가기관이 관리하는 제도에 따른 자료에는 존재하지 않는 노동자가 현실에서 노조를 만든 것이다. 원청사용자에 대한 책임을 묻는 사회적인 요구와 제조업체의 불법파견을 선언한 다수의 판례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고용관계 뒤에 숨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사용자는 줄고 있지 않다. 최소한의 노동조건 보장은커녕 헌법에 명시된 노동 3권을 비웃듯이 사용자는 계약해지와 폐업 방식으로 노동자를 압박하는 사례가 차고 넘친다.

노동자가 여기 있음을 보여 주고 사용자 책임을 묻기 위한 기본적인 원칙을 확립해야 하지 않을까.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근로자 개념과 사용자 개념을 확대해 복잡한 고용관계에 처한 노동자에게도 노조를 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사용자의 책임 또한 중요한다. 부당노동행위와 관련해 직접적인 고용관계를 맺은 사용자뿐만 아니라 원청 등 제3자에 의한 지배·개입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에 사용자 개념을 확대하고 처벌을 강화해 노동 3권 보호를 위한 법의 실효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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