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재보험 적용과 구상권 폐지 등을 요구하며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건설노조 건설기계 대표자들이 6일 김삼화 국민의당 의원(환경노동위원회)과 농성장에서 만나 얘기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레미콘 노동자 A씨는 현장에서 차량 바퀴를 점검하다 팔을 다쳤다. 산재보험이 적용돼 3개월 동안 매달 125만원씩 받았다.

덤프트럭 노동자 B씨는 차량 정비를 하다 미끄러져 내려온 자신의 차량에 치여 다리뼈가 으스러지는 중상을 당했다. 그런데 산재 적용을 못 받았다. 개인적으로 든 자동차보험에서 수술비·입원비 명목으로 2천만원이 지급됐지만, 수술비만 3천만원 넘게 나왔다. B씨는 병원비 부담으로 회복되지 않은 몸상태로 퇴원했다.

A씨와 B씨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둘 다 건설기계장비를 다루는 노동자라는 점에서 같지만 한 명은 산재보험 적용을, 다른 한 명은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한다. A씨는 특수고용노동자 중에서도 정부가 산재적용을 허용한 레미콘 운전사고, B씨는 그 범주에 포함되지 못한 덤프트럭 운전사이기 때문이다.

고용형태가 거의 똑같은데, 레미콘은 산재보험이 적용되고 덤프트럭은 안되는 황당한 상황이다.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13일 총파업을 하는 이유다.

개인사업자 생활 20년, 삶은 나락으로…

건설노조 건설기계분과위원회가 이날 하루 일손을 놓고 상경투쟁을 한다. 노동기본권 쟁취·산재보험 전면 적용·구상권 폐지·퇴직공제부금 당연적용을 요구안으로 내걸었다. 건설기계분과위 간부들은 지난 3일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6일 오전 농성장에서 기자들과 만난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살아온 세월이 벌써 20년"이라며 "일하다 다쳐도 개인 책임, 임금이 체불돼도 개인이 감내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변문수 노조 수도권남부지역본부장은 "레미콘 노동자들은 그나마 산재보험 적용이라도 받지만, 나머지 26개 건설기종은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다"며 "죽든 다치든 간에 본인이 모든 걸 책임져야 해서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과 민간보험사들의 구상권 청구도 건설기계 노동자들의 목줄을 죈다. 공단이나 보험사들은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다른 노동자나 시설물에 피해를 입힌 경우 보험급여로 피해를 보상한 후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다. 지난해 6월 충북의 한 건설현장에서 조합원 C씨가 굴삭기로 돌쌓기를 하던 중 작업반장이 선회하는 버킷에 충돌해 사망했다. 공단과 삼성화재가 각각 2억400만원, 5천270만원씩 산재보상을 해 줬다. 1개월 뒤 삼성화재는 C씨에게 3천750만원의 구상권을 청구했다. 조재현 충북건설기계지부장은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아직까지 구상권을 청구하지 않았지만 2년 안에 청구할 것으로 보인다"며 "과연 얼마나 구상권을 청구할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막막한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조 지부장은 "현장에서 발생하는 건설기계 사고 책임의 대부분이 안전관리자를 배치하지 않거나 안전교육을 하지 않는 원청에 있는데도 책임은 오롯이 노동자들이 진다"며 "건설기계에 대한 구상권 철회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노후대비는 남의 일" 퇴직공제부금 적용 시급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일손을 놓는 게 두렵다. 퇴직공제부금을 적용받지 못하는 탓에 노후대비는 언감생심이다. 철근·목수 같은 건설일용직들은 하루 일한 만큼 원청이 퇴직공제부금을 납부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개인사업자등록증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각종 사회보험에서 제외된다.

신동수 서울경기동부건설기계지부장은 "현장관리자들의 지시에 따라 일하는 건 똑같은데, 우리는 비싼 연장(건설기계) 하나 가지고 있다는 죄로 퇴직공제부금 혜택을 못 받는다"고 한숨을 쉬었다.

건설기계 노동자들의 숙원은 해결될까. 대선을 앞두고 있어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게 노동계 시선이다.

대선후보 중에서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 3권 보장과 산재보험·고용보험 의무화 공약을 낸 후보는 문재인(더불어민주당)·안철수(국민의당)·심상정(정의당) 후보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특수고용 노동자를 근로자 보호범주에 포함하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노조법상 근로자 개념 확대에는 동의하지 않고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노동자성 인정은 반대,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가입에는 동의하고 있다.

이영철 노조 건설기계분과위원장은 "대선 때마다 관행적으로 나오는 공약이 아니길 바란다"며 "대선후보들과 국회의원들은 우리의 요구를 받아 관련법 개정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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