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영 기자

“중국의 경제제재 이후 중국어 관광통역안내사는 모두 실업자가 됐습니다. 더 이상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아요.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1만명의 중국어 관광통역안내사에 대한 어떠한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중국어 관광통역안내사 문경숙씨)

“면세점 옆 쇼핑센터 직원 15명이 전원 해고됐어요. 중국의 경제보복 뒤 매출이 반토막 나기 시작해 20~30%선을 겨우 유지하는 곳이 많습니다. 당장 줄일 수 있는 건 인건비잖아요. 화장품 매장에서도 비정규직 2명을 모두 해고했고, 카지노 주방에서 일하던 직원 5명 중 3명도 실업자가 됐습니다.”(제주면세점 부루벨코리아 노동자 정경숙씨)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으로 우리나라에 대한 중국의 경제보복 조치가 강화되면서 국내 관광·유통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관광·유통업계 노동자들은 기업의 영업악화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 근무자의 절반 이상이 퇴직위로금을 받고 퇴사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300명 정규직 전환 요원해져”=국내 관광·유통업계 노동자들이 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사드 배치 강행에 따른 관광·유통업계의 불황과 고용위기’ 간담회에 참석해 중국의 경제보복 조치 이후 벌어진 실태를 증언했다. 서울면세점에서 일하는 최상미씨는 “회사는 중국관광객이 없다는 이유로 직원들에게 무급휴직을 요구하고 있다”며 “우리가 용돈벌이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지 않냐”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3월15일 이후 계약직 300명의 정규직 전환이 요원해졌다”며 “정규직이 될 거라는 기대로 일하던 우리는 이제 언제 잘릴지 몰라 불안에 떠는 신세가 됐다”고 말했다. 중국은 지난달 15일부터 한국 단체관광 상품 판매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성종 서비스연맹 정책실장은 “중국 관광객 급감으로 수익이 감소하며 관광·유통업계에서는 감원 움직임이 일고 있다”며 “면세점에서는 한 매장에서 2~3개의 브랜드를 함께 판매하며 인력 줄이기 방안을 시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영업자에게 빚내라는 정부=국내 관광·유통업계는 장기화될 중국의 경제제재에 맞춰 정부에 생존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중국의 경제보복으로 피해를 입은 기업의 경영 안정화를 위해 5천400억원의 지원자금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소상공인에게는 1천억원 규모 내에서 업체당 7천만원(대출기간 5년) 한도로 자금을 빌려준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관광기금 특별융자로 총 1천200억원(최대 20억원·2년 거치 3년 분할상환)을 지원한다.

정부는 경영 안정화를 위해 자금을 신속 투입한다는 입장이지만 현장에서는 “실효성 없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자금 투입이 매출 발생으로 이어지지도 않을뿐더러 관광·유통업계 노동자들의 고용도 지킬 수 없다는 이유다.

명동에서 노점상을 운영 중인 A씨는 “결국 돈을 빌려주겠다는 것이 정부 정책”이라며 “이미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는 자영업자에게 또 빚을 얻으라는 꼴밖에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중국 관광객이 빠져나간 이후 하루 12시간 꼬박 일해도 2~3만원 수익밖에 내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정부는 실질적인 매출 증대로 이어질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종훈 무소속 의원은 “정부 정책이 국민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며 “대출을 받아 고용을 유지할 기업은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간담회는 김종훈 의원과 김종대 정의당 의원·서비스연맹·민주노점상전국연합·전국유통상인연합회가 공동 주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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