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엔지니어링 노동자들이 고성과자와 저성과자 간 임금격차를 키우는 임금체계에 반발해 노조를 만들었다. 1970년 회사 설립 47년 만의 첫 노조다. 현장에서 사실상 '성과퇴출제'로 작용하는 누적연봉제에 대한 불만이 노조 조직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누적연봉제는 승격·승급에 따른 임금인상이 없고, 연봉인상률과 인하률을 누적시키면서 고성과자와 저성과자 간 격차가 점점 커지는 임금체계다.

삼성엔지니어링 47년 만에 설립된 노조

2일 건설기업노조(위원장 홍순관)에 따르면 삼성엔지니어링지부는 지난달 13일 창립총회를 열고 이틀 뒤인 15일 노조에 가입했다. 노조 중앙위원회는 지부를 인준했다. 지부는 포털사이트에 카페(2일 현재 회원수 10명)를 개설해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가입신청을 받고 있다.

2013년 회사가 경영악화를 이유로 도입한 누적연봉제를 놓고 직원들의 불만이 분출했다는 후문이다. 회사는 누적연봉제를 도입하면서 "승격·승급에 따른 임금상승을 폐지하고, 해당 재원을 고성과자들 보상에 사용해 성과중심 보상체계를 확립하겠다"며 "고성과자에게는 파격적인 보상을 제공하고, 보통 성과자에게는 안정적인 성장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지부는 누적연봉제를 '성과퇴출제'로 보고 있다. 회사가 주장하는 취지와 달리 저성과자 임금 삭감 폭이 과다하기 때문이다. 실제 2년 이상 최하 등급을 받은 직원들이 권고사직 대상에 포함되는 일이 허다하다는 게 지부 설명이다. 지부는 부장급 직급이 두 번 최하등급을 받을 경우 2년 새 급여 1천800만원 정도가 삭감되고, 최고 등급과의 격차가 최대 3천만원까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지부는 고성과자와 저성과자를 가르는 평가기준이 불공정하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수주실적 부진으로 프로젝트 대기 중인 직원에게 "업적이 없다"는 이유로 저성과자로 평가하는 식이다. 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최저연봉 등급을 받은 과장급 직원은 임금이 삭감되고 업무에서 배제되는 등 압박을 받다가 권고사직으로 12개월치 위로금을 받고 퇴직했다. 한 부장급 직원은 2년 연속 최저 연봉등급을 받아 임금이 대폭 삭감된 후 업무 배제와 장기대기발령에 따른 스트레스로 건강이 악화해 퇴사했다.

"정리해고 수단으로 악용되는 누적연봉제"

지부장 A씨는 "대부분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은 배제된 채 경영·인사·지원부서 같은 극히 일부 엘리트 부서·계층의 나눠 먹기 식 고성과자 잔치가 벌어진다"며 "일반 직원들 사이에서는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이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직원들끼리 경쟁을 시켜 일부 직원들의 돈을 빼앗아 고성과자에게 보상하는 식으로 인센티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며 "회사는 동료애 없는 경쟁의 장이 됐고, 누적연봉제는 교묘한 정리해고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A씨는 "내부에서는 성과제에 대한 근본적인 불만이 나오고 고용불안·권고사직에 대한 공포분위기가 조성돼 있는데도, 회사는 노사협의회를 통해 성과급 차등 정도를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무노조 기업인 삼성엔지니어링은 노사협의회에서 임금·복리후생 관련한 사항을 합의하고 있다. 직원을 대표해 '사우협의회'가 협상을 한다. 지부는 최근 협상에서 복리후생과 임금부문에서 양보가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지부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조합원을 모집 중이다. 일정 정도 조합원이 모이면 회사에 단체교섭을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A씨는 "최근 삼성중공업과 합병 얘기도 나오고 있어 고용불안이 심화할 수 있다"며 "합병을 비롯한 물리적 구조조정이 있을 경우 개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노조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순관 위원장은 "헌법에 보장된 노조 할 권리가 삼성엔지니어링에서도 지켜지길 바란다"며 "직원들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임금구조를 바꾸기 위한 합법적 조직을 탄압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삼성엔지니어링측은 "노조설립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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