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고도성장기는 끝났다. 찬란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에 잠기기에는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이 너무 척박하다. 청년실업·양극화는 우리 사회 고질병이 된 지 오래다. 그래서일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매듭을 풀어야 할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듯하다. 정부가 내놓은 청년실업 대책은 속빈 강정이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27·사진)은 “원인 분석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정책결정권자들은 당사자들이 생각하는 해법을 보지도 듣지도 않았다”고 비판했다. 앞다퉈 ‘일자리 몇만 개’ 공약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뒤에 시행한 정책이 공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 위원장은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정부·정당·기업이 약속한 일자리만 합쳐도 6천만개가 된다고 했다. 그는 “공약대로라면 지금 우리나라에 실업자는 없어야 한다”며 “2010년 이후 도저히 수를 셀 수 없어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자리 몇만 개라는 '섹시한' 프레임으로 현혹하지 말고 고용보험을 개혁해 저임금·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워킹푸어’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일노동뉴스>와 지난 29일 서울 마포구 청년유니온 사무실에서 만난 김 위원장은 “고용형태 변화에 맞춰 노동자 개념을 노동시장에서 소득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최저임금 1만원 요구에 담긴 열패감”

- 최저임금을 주지 않은 사업주 적발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사업주 인식이 아직 부족한 것 같다.

“임금체불로 포괄해서 보자. 한국에서 노동법을 어기는 것은 도로교통법을 어기는 것쯤으로 인식된다. 이렇다 보니 알바노동자 임금체불로 논란이 된 이랜드 사태가 났다. 터질 일이 터진 거다. 임금체불 문제는 국가적 과제다. 지불능력이 있는 기업부터 ‘법은 반드시 지킨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최저임금법을 지키는 문화를 확산시켜야 한다.”

- 최저임금위원회 논의 구조도 문제다.

“박준성 전 최저임금위원장이 과거 ‘위원회가 어디로 갈지 나도 모른다’식의 말을 한 적 있다. 아니나 다를까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비망록(업무수첩)에서 최저임금 가이드라인이 나왔다. 청와대 개입이 확인된 거다. 위원회의 지속적이고 불가역적인 개혁을 고민해야 한다.”

- 최저임금 1만원 요구가 거세다. 최저임금 1만원이 되면 우리는 행복할까.

“‘헬조선’이라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임금보다 물가 오르는 속도가 더 빠르다. 시장경제 변화에 대한 열패감이 1만원 요구에 담겨 있다. 나아가 운동 주체들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달성을 위한 개혁과 삶을 바꾸는 개혁 주체로 저임금 노동자를 어떻게 세울 것이냐를 고민해야 한다.”

“고용형태 아우르는 노동자 개념 중요”

- 정부·지자체·정당 할 것 없이 청년실업 대책을 내놓지만 성과를 내는 정책이 없다.

“청년실업 실태는 파악하는데 원인을 분석하지는 못한다. 대책이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정책을 만드는 전문가들이 원인을 치열하게 고민했는지 잘 모르겠다.”

- 실효성 있는 정책은 무엇인가.

“구조적 저성장기로 들어왔을 때 벌어진 청년실업은 영속적인지 고민해야 한다. 다급하게 대책을 내놓지 않았으면 한다.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말라. 피상적 대책밖에 나오지 않는다.”

-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다.

“당사자가 보는 인식과 해법이 있는데 정책결정권자는 이걸 듣지 않는다. 나는 고용보험 개혁을 주장한다. 섹시하지 않다. 창업밸리를 육성해 일자리 몇만 개 만들자는 주장이 더 섹시하다. 2000년대 들어 정부·정당·기업이 앞다퉈 ‘청년일자리 몇만 개’ 공약을 내놓았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 그 수를 세다가 포기했다. 셀 수도 없다. 그 수를 다 더하니 대한민국 인구를 넘더라. 6천만개까지 셌다. 공약대로라면 지금쯤 실업자는 없어야 한다. 멋진 말에는 뻥이 많다. 그래서 멈추자는 거다. 멈추면 고용보험이 보인다.”

- 고용보험은 어떻게 개혁하자는 건가.

“고용보험은 90년대 제조업·정규직에 맞춰 설계됐다. 2017년에 맞춰 바꾸자는 거다. 산업과 고용형태는 다변화됐다. 단순히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나눌 수 없다. 지금의 고용보험은 시혜적이다. 권리로서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적용받을 수 있는 범위를 확대하고 보편적 복지로 변화해야 한다. 실업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 고용보험을 모든 국민이 보장받을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 광의의 노동자 개념을 채택하자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프리랜서는 노동운동의 인식 체계에서 보면 특수고용 노동자다.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할 때 ‘비정규직’ ‘특고’라고 하지 않는다. 광의의 노동자라는 건 다수의 노동자가 스스로 규정하는 정체성과 실제 노동운동의 담론을 일치시키자는 거다. 상위에 ‘노동자’라는 개념을 두고 고용형태를 뛰어넘어 ‘노동시장에서 소득을 필요로 하는 자’를 모두 포괄하자는 거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상의 노동자와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가 나눠져 있으니 혼란스럽지 않나. 노조에 가입하면 노동자고, 노조에 가입하지 않으면 노동자가 아닌가? 그럼 근로계약서를 안 쓴 사람의 정체성은 뭔가.”

▲ 정기훈 기자

“저임금·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워킹푸어”

- 노동진영 의제에서 청년문제가 후순위라고 생각하나.

“노동운동 선배들께 섭섭한 것은 청년문제가 국가적 어젠다가 된 구조적·실질적 원인이 있는데, 이걸 들여다보는 것에 좀 박하다.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청년문제를 끌어안는다? 이게 다가 아니다. 독자적인 청년문제는 별도의 논리·이론·대응 체계를 구축하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려면 서로가 애를 써야 한다. 우리가 민주노총·한국노총 역사를 공부하는 것과 같다.”

- 어느 청년활동가가 노동진영 회의에서 발언권을 얻기도 어렵고, 발언해도 귀담아 듣는 사람이 없다고 토로하더라.

“노동진영이 조금 더 개방적이었으면 좋겠다. 민주노총은 왜 브랜드 마케팅 전문가에게 컨설팅을 받지 않나. 기업이든 조직이든 자기 조직의 대중적 이미지를 높이려면 컨설팅은 필수다. 한국의 내셔널센터가 그걸 안 한다는 것은 조금 안타깝다. 구호를 해야 바뀌나? 아니다. 카드뉴스 하나만 잘 만들어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 다양한 이름의 비정규직이 존재한다.

“비정규직은 계약기간의 정함이 있는 노동자일까, 저임금·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 약자일까. 헷갈린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이해가 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사업장 문제, 누군가에게는 정규직이 되는 문제, 누군가에게는 저임금 문제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다양한 인식이 존재한다. 따라서 비정규직 문제는 계약기간의 정함이 있는 노동자의 고용불안 문제로 한정하고, 다수 노동자가 겪는 저임금·고용불안의 문제를

‘워킹푸어’라는 개념으로 새롭게 정립해 현재의 노동문제를 접근해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 청년유니온은 세대에 집중한다. 청년들의 고용형태가 워낙 다양해서 각각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 개별 사업장을 뛰어넘는 의제를 제시해야 의견이 모인다. 최저임금·고용보험이 그런 유다. 다양한 고용형태를 가진 조합원의 결속을 위해 내부적으로는 로컬커뮤니티를 통한 문화적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조합원들이 함께 영화도 보고, 축구도 하며 조직력을 키우는 거다. 조합원에게 소속감·경제적 효능감·만족감을 충족시키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게 앞으로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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