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이후 노사관계의 가장 큰 변화 중에 하나는 비정규직 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했다는 점일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요즈음도 몇 달이 지나기 무섭게 비정규직의 비중은 높아져 가고 있고, 비정규직의 사회보험적용, 근로자성 인정여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산적한 문제가 비정규직 문제의 현주소다. 과연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은 없는가. <매일노동뉴스>는 이시대 노사관계의 뜨거운 화두인 비정규직 문제의 현주소와 향후 과제를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322개 기업체에 인력난 경험여부를 물어본 결과 24.5%의 사업체들이 인력난을 경험하고 있다고 답변했고, 인력난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사업체들은 기존인력의 전환배치(37.5%) 다음으로 비정형근로자의 활용(22.2%)을 1순위로 꼽았다. - '비정형 근로자의 증가원인과 전망'(배진한 충남대 교수)"


해고가 용이한데다 정규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고 4대 사회보험 등의 복지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탓에 기업들의 비정규직 노동자 선호도는 갈수록 늘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IMF 직전인 지난 96년 43.4%를 기록했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은 외환 위기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 지난 해 5월 현재 53%로 늘어났다. 최근에는 통계청 '경제활동 인구조사 부가조사'를 분석한 결과, 국내 비정규직 노동자의 규모는 지난 해 8월 현재 758만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58.4%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10명의 노동자중 6명이 비정규직인 셈이다.

다만 이에 앞서 노동부 연구용역을 수행한 한국노동경제학회의 경우는 비정규직의 규모를 26.4%로 보고 있어 차이가 크다. 하지만 이 조사결과는 '장기임시근로자'를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노동계의 비난을 받고 있다. 또 노동부의 주장대로 OECD 주요국의 통계정의를 참조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영국 8.6%, 프랑스 16.8%, 독일 17.5% 등의 수준과 비교하면 결코 적지 않은 수치다.

"정규직과의 갈등, 경찰이 개입된 폭력사태로까지 비화된 캐리어사태. 이곳의 하청노동자들은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5-60% 낮은 한달 65-80만원 가량의 임금을 받고 비인격적 차별대우를 받아온 것에 대한 항의표시로 지난 4월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10인 이상 상용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노동부 '매월노동통계조사'에 따르면 지난 99년 하반기부터 경기가 회복되면서 99년에는 12.1%, 2000년에는 8%의 임금이 상승했다.

하지만 한국은행 피용자보수총액을 토대로 본 전체 노동자의 임금인상률이 같은 기간 1.9%와 1.8%인 것은 경기회복이후에도 임시·일용직과 10인미만 사업체 상용직은 오히려 임금이 삭감됐다는 것을 나타낸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부소장은 "99년과 2000년에 임시, 일용직과 10인미만 사업체 상용직의 임금인상률 추이를 계산해보면 각각 -5%와 -2.5%"라며 "고용형태별 임금격차는 98년 9만원, 99년 33만원, 2000년 49만원으로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해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지난 3개월간 월평균 임금총액은 84만원으로 정규직 157만원의 절반(53.7%) 수준에 그치고 있다. 또 월평균 임금이 100만원 이하인 사람이 정규직은 151만명(28.0%)인데 비해, 비정규직은 587만명(77.4%)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사회보험에 가입돼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수도 미미한 상태다. 국민연금, 고용보험, 의료보험 등의 각종 사회보험 가입률이 정규직의 경우 74-91%수준인데, 비정규직은 22-25% 밖에 안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불안한 일자리다. 한국통신은 지난해 전국 7,000여명에 달하는 선로업무 종사 계약직원들에게 사실상 해고통보를 내려 물의를 빚은 바 있다. 98년 1/4분기부터 99년 1/4분기까지 상용직은 매 분기 12-24만명 감소한데 비해, 임시직은 98년 1/4분기 38만명 감소한 뒤 동일수준을 유지했고 일용직은 98년 1/4분기 40만명 감소한 뒤 매 분기 9-19만명 증가했다. 기업들이 98년 1/4분기에는 보다 손쉽게 해고할 수 있는 임시, 일용직을 일차적인 감원대상으로 삼았고 2/4분기 이후 상용직은 단계적으로 줄여나갔음을 알 수 있다.

"계약직노동자들로 구성된 명월관노조는 기존 정규직노조인 워커힐호텔노조에서 가입을 허용해주던가, 규약을 바꿔 독자노조 설립이 가능하게 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이 역시 거절당했다. 노조를 만든지 1년 반이 넘도록 합법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가해지는 '차별'적 근로조건은 다양한 고용형태를 가진 노동자들에게 노조설립의 깃발을 들게 했다. 지난 해 노동부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99년 25개의 노조가 설립신고서를 낸데 이어, 2000년에는 상반기에만 25건이 접수됐다.

그러나 사용자와의 협상에서 겪는 어려움은 차치하더라도 우선 합법적인 노조로 인정받기까지도 산 넘어 산이다. 방어책으로 선택한 '노조설립'도 이들에겐 쉽지 않았던 것. 노동자성에 대한 인정여부, 기존 정규직노조와의 조직대상 논란, 여기에다 비정규직들이 노조를 만들면 심각한 수준의 고용불안까지 수반된다. 아직까지 합법성을 얻지 못한 보험모집인노조 등이 대표적인 사례. 한국통신, 대상식품 등이 노조설립이후 일사천리로 계약해지를 통보한 것도 마찬가지다.

지난 2월 국회에서 복수노조 허용을 5년간 유예한 법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노조설립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제약을 받게 됐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노조 규약 및 단체협약에서 비정규직원을 가입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는 노조는 각각 10.8%, 10.1%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노조설립이 증가하고 있는 최근의 현상에도 불구, 몇몇 조사에 따르면 국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가입비율은 아직 1-2%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충남대 배진한 교수는 "영국의 파트타임근로자의 노조조직률은 약 20%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네덜란드도 약 30%에 달한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 노조활동에 의존해 비정형근로자의 근로조건을 개선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조치가 시급한 가운데, 앞으로도 '불안한 일자리'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배 교수는 "271개 기업체를 관측한 결과 앞으로 3년후까지 비정형근로자의 수가 늘어날 것이라 예측하는 곳이 감소할 것으로 예측한 곳보다 훨씬 더 많게 나타났다"며 "국내 경제개방도가 최근 들어 더욱 높아짐에 따라 노동비용 절감에 대한 요구가 더 절실해질 수 있어 비정형근로의 확대추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안주엽 연구위원도 "경기가 침체기로 접어들면 비정규직이 늘고 회복되면 줄어드는 것이 보통"이라며 "그러나 한국의 경우 IMF 때 비정규직이 증가한 이후 최근 경기회복세에도 불구, 여전히 비정규직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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