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윤정 기자
 

노동자와 특수고용직·실업자·1인 자영업자·직업훈련생·연금생활자까지 포괄하는 ‘한국형 노동회의소’ 구성안이 윤곽을 드러냈다.

이호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제5간담회의실에서 열린 노동회의소 전문가 간담회(연구용역 중간발표회)에서 주제발표를 통해 한국형 노동회의소 구성안을 발표했다.

이날 간담회는 국회 민생경제와사회적합의포럼이 주최하고 민주연구원·한국노총·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으로 주관했다. 김용익 민주연구원장은 인사말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교섭력 격차 문제를 줄이는 것이 중요한데 대선 국면에서 그 논의가 충분치 못한 상황”이라며 “노동회의소 방안이 기존 노조와 충돌하지 않고 보완적 관계를 맺는다면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대선 공약으로) 채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용득 의원은 “노사관계나 사회적 대화라는 단어를 거침없이 쓰면서도 정작 그에 걸맞은 모델이 없다는 것은 모순”이라며 “경제적·사회적 측면에서 소통하고 접점을 찾아갈 수 있는 새로운 모델과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형 노동회의소는 '노동자 이익대변기구'

이호근 교수는 간담회에서 이용득 의원실이 발주한 연구용역 결과를 담은 한국형 노동회의소 구성안을 선보였다. 노동회의소 설립목적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에 방점이 찍혔다. 미조직 노동자 등 취약계층을 포함한 전체 노동자 이익대변기구 위상을 갖추겠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법정 민간경제단체인 상공회의소에 상응하는 전체 노동자 의무가입 법정 민간노동단체(노동자 자치조직)로 노동회의소를 설정했다. 법적 근거는 (가)노동회의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제정안)에 둔다.

노동회의소 기능과 역할로는 △정부 입법안·지자체 조례안에 대한 입장표명 △노동법 등 법률상담 △근로조건 향상 조치 △취업·전직 등 고용서비스 △직업훈련·재교육 △산재보상·예방·재활상담 △교육문화 활동 지원 △소비자 보호 △노동교육 △근로자 주거 지원 △여성·청소년 노동자 보호 △노조·사업장 수준 노동자대표조직에 정보 제공 △조사·정책연구 통한 노동자 싱크탱크 △중앙·지역수준 사회적 대화 지원 △국제협력활동을 상정했다.

회원 자격은 고용보험 가입 대상인 노동자와 특수고용직·실업자(실업급여 수급자)·1인 자영업자·직업훈련생·재택노동자·연금생활자다. 공무원·일반 자영업자·임원급 보직자·농어업 종사자는 제외했다.

노동회의소 대의원과 이사회 노동자대표 선출은 최저임금위원회처럼 노동단체에 추천권(60%)을 준다. 회원이 직접 투표하는 방식이다. 대의원은 40~60명, 이사회(집행부)는 7~10명 수준에서 구성한다. 정부와 지자체, 사업주의 협조 의무화를 특별법에 명문화한다는 방침이다.

대의원 추천권의 경우 양대 노총 각 17명, 여성노조 3명, 비정규노동센터 2명, 청년유니온 1명 등의 구성 비율을 제시했다.

노동회의소는 중앙과 지역에 동시 설치를 원칙으로 한다. 다만 지역회의소는 산업단지 등 노동자 밀집지역에 시범 설치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사무총장은 이사회에서 선임하되 대의원·이사회와 같은 4년 임기를 보장받는다.

이호근 교수는 노동회의소 회비와 관련해 두 가지 방안을 들었다. 월 5천원을 정액으로 하는 방안과 보수월액의 0.2~0.5%를 납부하는 방안이다. 오스트리아 노동회의소는 0.5%, 독일 브레멘·자를란트주 노동회의소는 0.15%, 룩셈부르크 노동회의소는 연간 31유로(3만8천원)를 납부하고 있다. 일정소득 이하 저소득자와 직업훈련생, 출산·육아휴직자, 산재요양자, 군복무자는 납부예외자로 분류했다. 이 밖에 예·결산보고는 국회와 지방의회에 하고, 감독기관으로는 고용노동부를 상정했다.

“법적 지위 강화하고 노조와 협력적 관계”

연구용역을 맡은 연구자들은 노동회의소 모델이 한국에 정착하려면 세 가지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첫째, 노동회의소와 노조와의 관계 설정이다. 임상훈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주제발표를 통해 “노조와 노동회의소 관계 설정과 제도화 측면에서 네 가지 선택방안이 존재한다”며 “현재 노동의 문제를 극복한다는 전제하에 사회적 수용성·효과성·정당성을 고려해 최종 방안을 선택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 교수는 '선택1안'에서 노동회의소 법적 지위 같은 제도화 강화와 노조와 노동회의소 간 협력적 관계를 강조했다. 노동회의소는 모든 노동자가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법정단체로 임금의 0.5%를 걷는 회비로 운영된다. 노동회의소·노조 간 협력이 중요한데, 노조는 교섭·협약을 담당하고 노동회의소는 사회적 대화·입법을 맡는다.

'선택3안'에서는 선택1안과 대비되는 제도화 약화와 상호 독립적 관계에 주목했다. 노동회의소에는 일부 노동자가 임의로 가입하고, 고용보험이나 국고를 지원한다. 노동회의소와 노조는 경쟁관계에 있다. 일부 고용·복지서비스 제공기관으로서 위상을 갖춘다.<그림 참조>

다음은 당사자 참여와 재원 문제다. 선택1안은 노동자 회비로 운영하고, 선택3안은 고용보험기금 또는 국고를 지원한다. 후자의 경우 정부 퇴임관료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는 정부 산하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노사발전재단이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된다.

이호근 교수는 “정부 산하기관으로 전락하느냐를 결정짓는 기준은 당사자 참여와 재정의 독립성에 있다”며 “30인 미만인 경우 노사협의회가 작동하지 못하는 만큼 사업장 단위에서 당사자들이 직접 참여하도록 종업원평의회 같은 대폭적인 혁신이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마지막으로 노조의 역량 문제가 꼽혔다. 주제발표를 한 김기우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회의소 설립과 안착을 위해서는 노동에 대한 국가와 책임 있는 사회주체의 관심과 자신감이 중요하다”며 “국가가 노조의 역량이 받쳐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동회의소와 노조가 협력적 관계를 맺더라도 노조가 역량이 안 되면 정부와의 관계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다”며 “노조의 역량이 중요하기 때문에 지역에서 시범사업을 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자들은 이런 점을 반영해 선택1안에 기초해 한국형 노동회의소 구성안을 마련했다.

“노사관계 청사진 함께 만들어야”

토론자로 참석한 전문가들은 보완을 주문했다. 황규성 한신대 교수(공공정책연구소)는 “90% 미조직 노동자를 위한 새로운 이익대변기구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공감하지만 초기 조건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세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오스트리아와 우리나라는 시대적 배경이나 노조와의 관계, 노사관계제도 같은 출발선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노동회의소가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노조의 잔여적 또는 지원적 역할보다는 노조 조직화를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진우 서울연구원 초빙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노동현실을 볼 때 노동회의소 설치가 우선순위는 아니다”며 “새 정부의 역할은 헌법상 노동 3권을 실현하고 단체협약 적용률을 높이면서 노조를 강화하는 것이 1차적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회의소 안에서 노조 조직률 강화 전략을 채택한다면 또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 중요한 것은 노동회의소만 부각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노사관계로 나아가는 청사진을 보여 주는 것”이라며 “노조를 버리고 노동회의소로 가는 게 아니라면 산별교섭 강화와 조직률 제고, 근로자 개념, 단협 적용률을 포함한 노사관계 모델을 패키지로 보여 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연구위원은 “노동회의소 추진시 노조를 건드리지 않는 상세한 방안을 만들어 의심을 불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민 청년유니온 정책팀장은 “노동회의소 안에서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가 기존 노조처럼 민주성 확보라는 면에서 소외될 수 있다”고 우려한 뒤 “노동회의소 강제가입의 경우 노동자가 자기 정체성을 자각하는 과정이 생략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회의소를 노조가 주도한다고 하지만 지금 노조의 역량을 볼 때 지금의 노조와 완전히 다른 모습의 노동회의소가 될지 의문”이라며 “노동회의소가 하는 역할이 고용노동부 역할과 겹치는데, 공무원 입장에서는 자신들보다 능력·경험·스킬이 없는 (노조) 사람들에게 이관하는 것에 반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노조가 커지고 역량을 강화하지 않으면 노동회의소가 제대로 역할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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