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방송작가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저임금·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방송작가 현실이 조명됐다. 이은영 기자

서명숙(35)씨는 방송작가의 꿈을 안고 2008년 5월1일 방송국에 출근했다. 출근 첫날부터 서씨를 기다린 건 야근이었다. 1일 오전 10시에 출근한 서씨는 다음날 새벽 3시에 퇴근했다. 한 달에 1~2일 쉬고 받은 월급은 100만원. 원천징수 3.3%를 제하고 손에 쥔 금액은 96만7천원이다.

9년이 지난 현재 방송작가 처우는 개선됐을까. 서씨에 따르면 막내작가들은 여전히 월 120만원 남짓을 받고 있다. 1~2년 뒤 서브작가로 입봉해도 임금은 비슷하다. 9년 전 서씨와 함께 방송작가의 꿈을 가지고 방송일에 뛰어들었던 동료 중 대다수가 방송국을 떠났다.

◇막내작가 시급 3천880원=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방송작가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저임금·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방송작가의 현실이 조명됐다. 이날 토론회는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과 방송작가유니온(준)·언론노조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방송작가는 프리랜서로 일하며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근로계약이 아닌 위임·도급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특수고용 직종으로 분류된다. 막내작가는 최저임금을 밑도는 돈을 받으면서도 열정페이를 강요당한다. 토론회에 참석한 서씨는 “막내작가 2년차에 서브작가로 입봉했지만 월급은 그대로 100만원이었다”고 토로했다.

방송작가유니온 활동을 하는 이향림(30) 작가는 “노동강도에 비해 막내작가 급여가 너무 적다”며 “이마저 받지 못해 임금체불을 경험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년간 침묵의 카르텔 속에서 이런 행태가 유지돼 왔다”며 “더욱 심각한 것은 방송작가 스스로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언론노조가 지난해 발표한 ‘2016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현직 방송작가 647명 중 68.8%가 구두계약을 체결했다. 불과 6.6%만이 서면계약을 했다. 24.6%는 노동조건에 대한 안내조차 받지 못했다.

방송작가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53.8시간이다. 월 평균 급여는 170만원 정도다. 막내작가 시급은 3천880원이다. 올해 최저임금 6천470원에 턱없이 부족하다. 심지어 46%는 “체불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인권침해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인격무시와 관련한 발언을 들었다”고 답한 비율이 82.8%나 됐다. “욕설을 들었다”는 응답도 58.4%로 조사됐다.

◇“표준계약서 작성해야”=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방송작가가 방송국에서 구체적인 지휘·감독을 받지 않는 이유는 창의적으로 이뤄지는 업무의 특성 때문”이라며 “그들이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권 변호사는 “건설노동자의 경우 단체교섭을 통해 표준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다”며 “방송작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상 노동자성이 인정되고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만큼 노조 결성을 통한 단체협약 체결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임영미 고용노동부 고용차별개선과장은 “막내작가들이 계약서를 쓰는 경우가 흔치 않다”며 “표준계약서를 마련해 작성함으로써 근로조건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오기현 한국PD연합회장은 “막내작가의 고용문제를 ‘PD 대 막내작가’의 관계가 아니라 ‘방송사 대 막내작가’의 관계로 확대시켜야 처우개선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며 “전속제도 도입을 검토해 최소한의 고용안정을 보장해 주는 방안도 고민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