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동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길에서 만난 사람 칼럼 제목을 같이 정했던 신문 발행인. 동명의 책을 출판하기로 했을 때 흔쾌한 결정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출판사 대표. 돈 안 되고 고달픈 20년 외길 노동언론인. 2008년부터 이달 6일까지 매일노동뉴스 대표를 맡았던 박성국 독자고충처리위원장.

박성국은 대학에서 국사학을 전공하고 철도현장에 들어가려고 준비하던 중 노동언론에 첫발을 디뎠다. 1995년 주간노동자신문에 입사했다. 99년부터 노동일보에서 노동현장을 취재했다. 2006년 노사저널 편집장을 거쳐 2007년 1월부터 매일노동뉴스 편집부국장, 3월부터 편집국장을 맡았다. 2008년 3월 매일노동뉴스 대표 및 발행인이 됐고, 같은해 9월 지령 4천호를 발행했다.

2012년 11월2일에는 창립 20주년 및 지령 5천호 매일노동뉴스 후원의 밤 행사를 개최했다. 100년 가는 노동언론의 약속 '노동, 세상을 꽃피우는 힘'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노사정 인사들이 모여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고 노동언론 발전을 기원했다. 필자도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당시 박성국 대표이사는 “매일노동뉴스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소통·통합·화통을 지향한다”는 거시적 지향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개방과 연대·융합의 원칙에 따라 노동 콘텐츠를 나누고 공유하면서 노동전문 일간지의 바탕을 튼실하게 다질 것이며, 노동언론 생태계를 복원해 명실상부한 노동전문 일간지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노동포털 구축을 통해 노동정보뱅크·노동자료 아카이브·매일노동뉴스 역대기사 검색 등의 서비스 구상과 증자계획도 내놨다.

2015년에는 노동언론 재직 20년을 맞이해 지인들이 조촐한 저녁식사를 마련해 축하하기도 했다. 당시 필자는 국제고용노사관계학회 세계대회 참석차 남아공으로 출국하느라 참석을 못해서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척박한 노동언론의 현실에서 20년을 버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에도 그는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감당했다. 매일노동뉴스는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국내 유일의 노동일간지로 안정적인 자리매김을 했다. 그가 2008년부터 대표이사를 맡아 임직원·기자들과 함께 고군분투한 결과였다.

필자와는 고려대 노동대학원 재학 시절 그가 한 기수 후배라 수업이 끝난 후 맥주잔을 같이 기울이며 서로의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2015년 1월부터 ‘길에서 만난 사람’이라는 칼럼을 쓰기 시작할 때 칼럼 제목을 함께 정했다. 물론 칼럼을 쓰도록 몇 년에 걸쳐 괴롭힌 사람들은 지금의 공동대표들이다.

30대 후반에 매일노동뉴스의 경영책임을 맡아 오랜 시간 무거운 짐을 졌던 그는 3월6일 매일노동뉴스 주주총회에서 후배들인 부성현·박운 공동대표 체제를 출범시켰다. 부성현 대표는 “올해 창립 25주년을 맞아 100년 가는 노동언론을 만들기 위한 기반을 구축하고 사옥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노동 3권이 온전히 실현되는 사회를 만드는 감시자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편집국장을 겸임하는 박운 대표는 “JTBC 보도부문 사장인 손석희 앵커처럼 경영하라는 주문을 받았는데, 부족하지만 구성원들과 함께 편집국을 이끌어 갈 것이고, 무소의 뿔처럼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고 한다.

박성국은 “두려움으로 대표이사를 시작했지만 동료들 덕분에 잘 마칠 수 있었으며, 새 경영진이 초심을 잃지 않고 담대하게 경영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애정 가득한 주문을 했다. 그는 대표직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독자고충처리위원장을 맡았다. 멋진 이임, 부러운 시작이다.

박성국은 노동언론의 길을 함께 걸어온 후배들이 100년 가는 노동언론의 기틀을 보다 튼실하게 만들어 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중책을 짊어진 새 공동대표에게 격려를 보낸다. 향후 박성국의 역할도 그에 걸맞은 행보가 되기를 기대한다. 20년 노동언론인 박성국의 장도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hdlee20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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