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본부 실장

19대 대선이 눈앞에 다가왔다. 대다수 국민이 노동을 하고, 임금을 받아 생활하는 노동자인데도 노동문제는 경제문제의 일부분으로만 여겨지고 있다. 노동자들은 대선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이 노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제대로 된 노동정책을 내놓기를 바란다. 한국노총이 최근 대선 정책요구안을 발표하고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를 보내왔다. 5회로 나눠 싣는다.<편집자>

우리나라 장시간 노동은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다.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한국 취업자 연간 노동시간은 2015년 2천113시간으로, 멕시코(2천246시간) 다음으로 길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보면 연간 노동시간은 2천273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길다. 문제는 연간 노동시간이 2013년 2천247시간에서 2014년 2천284시간, 2015년 2천273시간으로 오히려 늘거나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실노동시간을 단축하겠다는 정부 약속은 공염불이 됐다.

장시간 노동이 허용되는 구조적 원인은 △광범위한 법정노동시간 사각지대 △고용노동부의 탈법적 행정해석이 기업의 장시간 노동 관행 근거로 악용 △잔업과 특근에 맞춰진 불안정적 임금체계와 저임금 구조 △노무비 절감에 초점이 맞춰진 인력규모 최소화에 있다. 각 정당과 대선주자들의 노동시간단축 대책은 이러한 원인진단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첫째, 근로기준법상 법정노동시간이 적용되지 않는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 법정노동시간을 적용받지 못하는 적용제외 사업장이 전체의 68%에 이른다. 이에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노동시간 전면 적용 △근로시간 특례업종 및 근로시간 적용제외 조항 축소·폐지 △포괄산정 임금제 금지 등의 법정노동시간 사각지대 해소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한 1차적 원인은 정부에 있다. 정부는 장시간 노동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근기법을 탈법적으로 해석하고 운용했다. 근기법 53조가 연장근로 한도를 주12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는데도 "휴일근로는 연장근로 한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노동부 해석이 탈법적인 장시간 노동을 합리화하는 근거로 악용됐다. 최근 법원 판례를 통해 정부의 잘못된 법 해석이 뒤집히고 있다. 정부의 위법한 행정해석을 즉각 시정해야 한다.

셋째, 잔업과 특근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저임금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잔업과 특근에서 해방되려면 초과노동 없이도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잔업·특근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 낮은 기본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특히 중소·영세 기업 노동자들의 생활수준 저하 없는 노동시간단축을 위한 고용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 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노동시간단축 관련 근기법 개정안 논의가 결국 실패로 끝났다. 마지막까지 탄핵심판을 받은 정권의 부역자들이 주 52시간제의 단계적 시행, 특별연장근로 허용,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등 노동시간단축에 역행하는 조치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노동시간단축은 고용창출 효과가 가장 높은 검증된 대안이다. 법정노동시간을 준수하는 것만으로도 일자리 60만개를 창출할 수 있다. 2011년 말 정부가 장시간 노동 사업장 500여곳을 적발해 이를 시정하는 과정에서 5천여개의 신규일자리가 만들어진 사례만 보더라도 그렇다. 요즘은 어디를 가나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생존전략과 일자리 대책 논의가 뜨겁다. 다가오는 시대의 가장 확실한 일자리 대책은 다름 아닌 장시간 노동 해소를 통한 ‘노동의 인간화’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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