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너무나 평범했던 사람들, 그것도 아직 파릇파릇한 청년들을 갑자기 실명이라는 삶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사건이잖아요. 충격적인 것은 이들이 불법파견에 내몰리고도, 안전장비도 없이 유해물질에 노출돼 산재를 당하고도, 그 이후에도 정부나 사회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최근 ‘2016년 스마트폰 제조 하청사업장에서의 메탄올 급성중독 직업병 환자군 추적조사 및 사후관리 방안’ 보고서를 펴낸 박혜영<사진> 노동건강연대 활동가(공인노무사)는 지난 24일 <매일노동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청년들이 메탄올에 중독돼 시력을 상실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지만 이들에 대한 사회적 보호가 없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고 말했다.

“너무나 평범했는데, 갑자기 나락으로”

노동건강연대는 지난해 2월 삼성전자·LG전자에 휴대전화 부품을 납품하는 하청업체 노동자 네 명이 메틸알코올(메탄올)에 중독돼 시력을 잃은 사건이 터졌을 때부터 이들을 도왔다. 그리고 그 과정을 엮어 보고서를 펴냈다. 박혜영 활동가와 함께 노동건강연대에서 이상윤 공동대표·전수경 활동가·유성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가 연구에 참여했다.

메탄올 중독 청년노동자 실명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진 충격은 컸다. 젊은이들이 생계를 위해 불법파견 노동을 전전하다 안전관리가 취약한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실명해 한순간에 미래마저 암흑에 저당 잡힌 신세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박혜영 활동가는 지난해 10월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사건 발생일로부터 무려 8개월이나 지난 그달 두 명의 추가 피해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박 활동가는 “추가 피해자들은 자신들도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산재 처리가 가능하냐고 물어 왔다”며 “이미 8개월 전에 언론에서 떠들썩하게 보도했고 고용노동부가 실태를 조사하겠다며 3천여곳의 사업장을 점검했는데도, 이들은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사건이 발생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두 명 모두 정부와 회사에서 어떤 안내나 연락을 받지 못했다”며 “시력을 왜 잃었는지 이유도 알 수 없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다 주변 사람에게서 메탄올 중독 이야기를 듣고는 노동건강연대에 문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 과연 정상적인가

박 활동가는 “사건이 어떻게 일어나게 됐는지, 피해자들은 어떤 보호를 받았는지, 하나하나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며 “백서 형태의 보고서를 펴낸 이유”라고 말했다.

피해자 6명 중 2명은 양쪽 눈 시력을 완전히 잃을 정도로 메탄올 중독이 심했다. 나머지 4명 역시 혼자서는 생활이 힘들 정도로 시력이 좋지 않다. 피해자들은 서른세 살 청년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20대 중반 나이다.

이들을 보호해야 할 노동부는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원청업체였던 삼성전자·LG전자는 하청업체 안전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정부와 원청 대기업들이 하청업체에서 일어난 불법행위에 눈감는 사이, 우리 사회 청년들은 아주 위험한 노동환경에 내몰렸다.

박 활동가는 “청년들은 생계를 위해, 혹은 용돈을 벌기 위해 파견노동을 시작해 휴대전화 부품공장에서 일했는데, 이제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시각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며 “우리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가 참여해 발간한 메탄올 중독 청년노동자 실명사건 보고서는 노동건강연대 홈페이지(laborhealth.or.kr)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보고서에는 메탄올 중독 청년노동자 실명사건의 전말과 피해자·가족들의 증언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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