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통신업체의 과도한 실적 압박은 오너가 생각을 바꿔야 해결된다.”

올해 1월 업무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숨진 LG유플러스 현장실습생 홍아무개(19)양 사건과 관련해 김진규(46·사진 오른쪽)·박대성(41·사진 왼쪽) 희망연대노조 공동위원장은 통신대기업 오너의 사고방식 전환을 촉구했다.

KT와 더불어 국내 유료방송 시장과 유선통신 시장을 장악한 LG유플러스·SK브로드밴드는 재벌기업이다. 총수가 기업 운영에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실적을 과도하게 압박하는 기업문화를 바꾸려면 결국 오너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

지난해 경기침체에도 3사는 꾸준하게 성장세를 이어 갔다. SK브로드밴드의 지난해 매출액은 8천440억원이다. 2015년보다 2천110억원 늘었다. LG유플러스는 같은 기간 1천153억원 증가한 6천121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인터넷 프로토콜을 이용한 TV인 IPTV 가입자가 폭증했다. IPTV는 2008년 상용서비스가 시작됐다. 2010년 366만명이던 가입자가 2014년 1천84만명까지 급증했다. 올해 1월에는 1천402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업계는 가입자 유치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 경쟁이 과열되는 동안 노동자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지난해 9월 SK브로드밴드 의정부홈고객센터의 도급기사가 궂은 날씨에 전신주에 올라 작업하다 감전돼 추락사했다. 올해 1월23일에는 LG유플러스 콜센터 현장실습생 홍양이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홍양은 고객의 서비스 해지를 막는 세이브(Save) 부서에서 일했다. 상품해지 의사를 밝힌 가입자를 설득해 가입을 유지하는 일인데, 콜센터에서 실적 압박에 시달렸다.

노조는 노동자들의 잇단 희생을 막기 위해 무리하게 실적을 압박하는 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3일 오전 서울 은평구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김진규·박대성 공동위원장을 만났다.

▲ 김진규 희망연대노조 공동위원장
▲ 박대성 희망연대노조 공동위원장

영업에 목매는 원청, 노동자는 '영업하는 기계'

- 현장실습생이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어떻게 보나.

박대성 : LG유플러스 현장실습생 사망은 한국 사회 노동 문제가 총망라된 안타까운 사건이다. 홍양과 학교, 업체가 표준계약서를 체결했지만 계약서대로 임금이 지급되지 않았다. 현장실습은 학생들이 실제 현장에 나갔을 때 업무에 필요한 기초적인 걸 배우고 경험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숨진 홍양은 특성화고에서 애완동물을 공부하던 학생이었는데, 전공과 무관한 콜센터에서 근무했다. 상담원들조차 기피하는 욕받이부서인 세이브팀에서 일했다. 학교가 현장실습을 보낸 학생을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다.

김진규 : 간접고용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홍양이 원청에 직접고용돼 있었다면 현장실습생에게 이렇게까지 실적을 압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설치기사들은 고소작업을 할 때 보호장치 없이 일한다. 사다리차도 없이 맨몸으로 전신주에 오른다. 협력업체가 영세하니까 기본적인 안전조치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빨리 일을 처리해야 하니까 안전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 원청의 영업 압박이 지나친 것 같은데.

박대성 : 유료방송 이용자가 2천700만명 정도다.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신규 가입자를 늘리려면 가입자를 빼앗아 와야 한다. 상담원들이 기계처럼 일하게 만든다. 딜라이브 상담원들로 구성된 텔레웍스지회 조합원들은 회사가 '나머지 공부'를 안 시켰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한다. 예컨대 영업을 잘하는 상담원의 멘트를 녹취한 걸 들으면서 손으로 반복해서 쓰라고 시킨다. 신규 상품이 나오면 시험을 본다. 점수가 낮으면 공부해야 한다. 10점 만점에 6~7점 정도 받으라고 공부시킨다면 납득하겠다. 그런데 10점 만점에 10점을 받으라고 한다. 황당하지 않나. 고객 불편사항을 잘 처리했지만 전화를 끊기 전에 영업을 안 했다고 혼나는 경우도 있다.

“노조 생기고 영업압박 약간 벗어나”

- 딜라이브텔레웍스가 강압적으로 영업을 하는 것 같다. 사례로 설명해 달라.

김진규 : 상담원들에게 콜수를 할당해 채우라고 강요했다. 콜수 압박이 심해 상담원들이 물 마시러 가기 힘들 정도였다. 자리를 비울 때마다 회사가 부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이 노조활동 의욕이 넘쳤는데도, 조직에 어려움을 겪은 이유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동료와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점심시간밖에 없었다. 화장실에 가고, 물 마시는 것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다.

박대성 : 노조가 없을 때에는 관리자들이 상담원들을 유치원생처럼 대했다. 관리자들이 선생님 행세를 했다. 화장실을 자유롭게 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더니 관리자들이 '우리가 언제 못 가게 했냐'는 식으로 발뺌했다. 상담원들이 하루에 몇 콜을 받았는지 상황판을 통해 일일이 확인하고 실시간으로 압박했는데도 말이다. 대부분의 콜센터는 기본급이 낮고 인센티브가 높다. 딜라이브는 A등급부터 D등급까지 있었다. D등급을 받으면 임금이 깎였다. 등급 간 격차도 몇십만원씩 났다. 노조가 생기고 등급 간 격차를 몇만원 수준으로 줄였다.

- 통신업체 영업압박을 줄이는 해법은 어떤 게 있나.

김진규 : 1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워 상위 몇 프로에게만 영업수당을 준다. 설치·수리기사든 상담원이든 간에 모든 직원에게 성취감보다 패배감을 주는 방식이다. 원청은 노동자를 쥐어짜서 목표를 달성하게 만든다. 목표를 달성하고 성과를 냈으면 노력한 만큼 보상을 해 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듬해 원청의 목표가 더 높아진다. 노동자들은 목표가 높아진 만큼 실적압박을 더 받는다. 악순환이다.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터질 수밖에 없다.

박대성 : 정부와 정치권이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중요한 건 경영진이다. 기업은 매년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부지런히 달려간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과도한 영업압박이 가지 않도록 실현가능한 목표를 세워야 하지 않겠나. 경영진은 회사 경영상황과 경영목표를 설명하고 노동자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간접고용 적폐 청산, 중요한 것은 오너 의지”

- 매년 협력업체에서 대규모 해고가 발생한다. 대부분 장기투쟁으로 이어지는데.

박대성 : 2014년에 딜라이브(옛 씨앤엠) 협력업체에서 109명이 해고됐다. 지난해 티브로드 협력업체에서는 50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노조가 있는데도 조합원 고용을 못 지킨다면 노조가 있을 이유가 없다.

장기농성 끝에 원청과 교섭테이블이 만들어지는데, 원청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불만이 이 정도로 높은지 몰랐다고 얘기한다. 원청이 하청 상황을 모르는 동안 외주화로 인한 문제가 쌓여 간다. 원청이 맡아야 할 업무를 외주화하고 조직을 슬림하게 운영하는 게 맞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지난해 딜라이브 협력업체 세 곳이 문을 닫았다. 협력업체 사장이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손을 털어 버렸다. 센터 세 곳을 원청이 직접 운영하라는 노조 요구를 회사가 받아들였다.

김진규 : 직영을 해도 비용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연구자료를 제시했다. 원청이 협력업체 사장에게 돈을 안 줘도 되니까 오히려 비용이 절감된다. 결국 오너와 경영진의 의지 문제다. 딜라이브·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에 노조가 생기면서 매년 회사와 싸웠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다. 조만간 협력업체 재계약 시즌이 돌아온다. 업체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또다시 고용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원·하청 구조 때문이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해고 불안감을 느끼며 불안정한 노동을 한다. 원청 경영진이 생각을 전향적으로 바꿔야 한다.

박대성 : 원청도 외주화가 좋은지 합리적인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다. 수천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기업이 비용 몇 억원 줄이려고 설치·수리·고객상담 같은 필수업무를 외주화하고 있다. 이런 구조가 기업의 선순환을 저해하지는 않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전 조직이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살아남을 수 있지 않나. 지금은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 하중이 전달돼 고꾸라지는 구조다. 노동자들에게 무슨 긍지와 자긍심이 생기겠나. 원청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래서 희망연대노조, 공감대 형성됐으면”

- 이달 초 5기 공동위원장에 당선됐는데. 목표가 있다면.

김진규 : 미조직된 곳이 많다. 신규 조직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게 힘을 보태고, 미조직된 사업장에는 노조를 만들 생각이다. 노동자들이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받았으면 좋겠다. 감정노동을 하는 노동자를 조직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

박대성 : 노조 행사에 오지 않고 노조에 발만 걸치고 있는 조합원들이 꽤 있다. 조합원 교육에 신경을 쓰고 있지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노조가 몸집만 커지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간담회가 됐든 교육이 됐든 조합원들과 소통하면서 갔으면 좋겠다. 노조의 지향과 가치를 조합원이 동의하고 '이래서 내가 희망연대노조를 하는 거야'라는 공감대가 형성됐으면 한다. 아래로 향하는 노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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