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여파로 해체 압력을 받고 있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50년 만에 이름을 바꾸는 내용의 혁신안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정경유착 고리를 끊을 수 있을지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많다.

재정 부족해 조직 줄이면서 ‘혁신 생색내기’

전경련은 지난 24일 발표한 혁신안에서 이름을 한국기업연합회(한기련)로 바꾸기로 했다고 밝혔다. 혁신안은 정경유착을 차단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전경련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에서 자금모집 창구 역할을 했던 사회본부를 폐지하는 것을 포함해 7개 본부로 이뤄진 기존 조직을 1본부 2실로 축소한다. 민간경제외교를 비롯한 국내외 소통기능에 주력한다. 조직과 예산은 40% 이상 감축한다.

정책연구 기능은 한국경제연구원으로 이관해 연구원의 싱크탱크 기능을 강화한다. 일반회계와 특별회계·사회협력회계로 자금을 운영해 왔는데 정경유착 고리와 보수단체 자금지원 역할을 했던 사회협력회계를 폐지한다.

전경련은 50년 만에 이름을 바꾸고 조직·예산을 대폭 줄인 것을 두고 “해체에 가까운 혁신”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LG·삼성·SK그룹이 전경련을 탈퇴한 만큼 조직감축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이들 그룹은 전경련 연간회비의 77%를 부담했다.

“사회협력 기능 없애도 정경유착 고리 이어져”

사회본부와 사회협력회계를 폐지하고 싱크탱크와 경제외교 기능을 강화한다고 해서 정경유착 근절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혁신안은 미국의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과 헤리티지재단을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BRT는 미국 200대 기업 최고경영자들로 구성된 경제단체다. 기부나 재단설립 같은 사회협력활동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BRT는 미국의 대표적인 로비단체로 꼽힌다. 헤리티지재단은 미국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연구기관이다. 연구단체라기보다는 정책홍보 단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경실련 관계자는 “정부·국회를 대상으로 한 의사소통 기능이 남아 있고, 사회협력 말고도 정경유착 방법이 다양한 형태로 모색될 수 있다”며 “사회협력부문 폐지 같은 조치만으로 정경유착이 근절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히려 정책연구나 경제외교를 빌미로 재벌대기업을 위한 새로운 정경유착 방법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 <정기훈 기자>

해체압박 계속될 듯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전경련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은 혁신안과 관련해 “이름을 바꾼다고 혁신이 되겠는가”라고 반문한 뒤 “해체가 답”이라고 논평했다. 강훈중 한국노총 대변인은 “전경련 혁신안은 국민 기만행위에 불과하다”며 “노동개악과 경제 양극화에 앞장선 전경련은 박근혜 탄핵과 함께 청산해야 할 대상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경련은 처음부터 대기업의 대정부 로비를 위해 출발해 부패로 이어진 만큼 제 버릇을 버리기 힘들 것”이라며 “사용자단체 본연의 역할을 못한다면 해체하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경실련이 지난달 주요 대선주자들에게 질의한 결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이재명 성남시장·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남경필 경기도지사·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는 전경련 해체에 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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