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22일 오후 잠실학생체육관. 한국노총이 개최한 전국단위노조대표자대회가 성황리에 열렸다. 총연맹 산하 3천600여개 단위노조 대표자들과 집행간부들이 체육관을 가득 메웠다. 참석한 대표자들은 노동개악을 끝내 막아 낸 지난 겨울 탄핵투쟁 과정을 스스로 평가하고, 무엇보다 50일도 남지 않은 19대 대통령선거에서 노동기본권이 바로 서는 정권을 조합원들의 손으로 만들어 보자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였다.

각종 매체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9년에 걸친 반노동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온 적폐를 청산하고 (친)노동자정권을 수립하겠다는 공약을 걸고 신임집행부를 출범시켰다. 사업의 핵심은 한국노총 100만 조합원이 지지후보를 정하고 선정된 후보의 당선을 위해 조직적으로 선거운동을 전개한다는 것이다. 조합원 총투표를 통한 대통령후보 결정은 일찍이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노동운동사의 한 획을 긋는 장면이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체육관은 열기가 가득했다. “노동개악 철폐” “비정규직 차별철폐” “성과연봉제 폐지” 등 대표자들의 연호와 함성이 연신 터져 나왔다. 행사순서에 맞춰 위원장 대회사와 현장 목소리를 듣는 순서가 진행됐다. “대통령 축사가 있는 노동절을 맞이하고 싶다”는 심금을 울리는 발언까지 나왔다. 불안해하는 마음은 여전했지만 이전과는 다른 희망의 목소리가 많았다.

특히 각 당의 주요 후보자 발언순서가 대회의 대미를 장식했다. 이름만으로도 익숙한 이들이다. 각 당과 예비후보자로서 각자가 내세운 노동공약을 힘 있게 주장했다. 이날처럼 후보자들로부터 노동과 관련한 구체적 정책방향과 내용을 들은 적은 없었으리라. 노동에 대한 깊은 이해로 대표자들의 큰 박수를 받은 이도 있었다. '이대로만 된다면…' 바람을 가져 본다.

뭔가 더 했으면 하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저들이 과연 한국노총과 조합원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내뱉은 말은 믿을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심까지 해 본다. 한 예비후보의 말처럼 조합원과 노동자들을 그토록 고통으로 밀어 넣었던 이전 정부들도 다들 당선되기 전까지 노동자들을 위해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다. 선거라는 공간에서 약간의 호기가 없을 수야 없겠지만 아예 거짓말을 한 사례도 많았던 터라 진정성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일부 후보자는 경제공약과 노동공약을 혼동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일자리정책은 경제공약에서는 앞자리에 둘 수 있겠지만 노동정책에서는 후순위여야 한다. 무너져 버린 노동기본권을 바로 세워야 노동정책 공약 아니겠는가. “일자리 몇 만 개를 만들겠습니다”라는 공약은 좀 미뤄도 된다. 그대로 믿는 조합원도 없을뿐더러 주요 노동공약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의 '고용노동부'가 이번주에 또다시 찍어 낸 일자리정책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높은 급여를 받는 일자리가 생기는데 누가 동의하지 않겠나. 중요한 것은 인간다운 생활이 보장되는 일자리다. 모든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자유로이 만들고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탄핵당한 정부도 매년 그럴싸한 일자리공약을 발표했다. 실제 만들어진 일자리는 어땠나. 이른바 나쁜 일자리가 대부분이었다. 그 자리를 여성과 청년, 은퇴한 장년 같은 노동약자들이 메우지 않았나.

9년 넘게 켜켜이 쌓인 노동현장의 먼지를 닥아 내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바로잡아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지만, 실무적으로는 가장 먼저 노동부를 되찾아야 한다. 고용노동부가 아닌 노동부. 8년째 되는 고용노동부는 글자 그대로 '고용'이 '노동'에 우선한다. 가치에서도 업무성격에서도 함께하기 어렵다. 한 예비후보가 정확히 지적한 것처럼 '노동의 가치'를 확인하고 되살리는 첫걸음이다. '노동자를 위한 노동부'라는 정체성부터 회복해야 한다.

어느 후보든 대표자들 앞에서 한 오늘의 약속은 금석에 새기고 반드시 매일 확인해야 한다. 평범한 시민과 노동자들이 이 나라의 주인 아닌가.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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