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간호조무사협회

인천지역 한 의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조무사 김선미(가명)씨는 지난해 8월 1천900만원의 연봉을 받기로 하고 병원에 들어왔다. 매달 160만원가량을 받았다. 동네 의원인 만큼 주민들이 퇴근 후에도 방문할 수 있도록 오후 8시까지 환자를 받았다. 김씨는 오전 9시부터 일을 시작했다. 근무시간은 10시간이 훌쩍 넘었다. 연장근로를 감안하면 사실상 최저임금보다 적게 받았다. 김씨가 원장에게 이런 얘기를 하자 포괄임금제로 연봉계약을 했으니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낮은 임금에 중노동을 하는 간호조무사는 김선미씨뿐만이 아니다. 간호조무사 10명 중 4명이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대다수는 근속연수가 쌓여도 급여가 오르지 않아 200만원 이상을 받는 노동자는 100명 중 5명꼴에 불과했다.

다수 의원급서 근무, 저임금 늪 빠져

홍정민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상상)는 21일 간호조무사 6천66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윤소하 정의당 의원과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연 '간호조무사 근로환경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다. 실태조사는 지난해 7월 모바일을 통해 실시됐다. 응답자 중 남성은 220명(3.3%), 여성은 6천445명(96.7%)이었다. 연령대는 40대(38.9%)와 50대 (27%)가 많았고 30대(19.8%)와 20대(13.8%)가 뒤를 이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매년 2만여명의 간호조무사가 배출된다. 지난해 10월 기준 전체 간호조무사는 16만6천22명이다. 의료기관별로는 의원급(64.7%)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가장 많았다. 이어 요양병원(16.58%)·병원(11.91%)·종합병원(5.47%) 순이다. 인건비를 낮추려 간호사 대신 간호조무사를 쓰는 것이다. 간호조무사들은 2015년 12월 의료법 개정으로 의료인력에 포함됐다. 의원급 병원에서는 간호사가 하는 환자 간호나 진료 보조 같은 업무를 간호조무사가 할 수 있다.

환자 생명을 다루는 업무를 하지만 간호조무사의 처우는 열악하다. 홍정민 노무사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간호조무사의 29.4%는 최저임금을 받았다. 14%는 최저임금도 받지 못했다. 임금은 병원 규모가 적을수록 낮았다. 최저임금 미만을 지급하는 곳은 의원급(17.5%)이 가장 많았다. 중소병원급(14.4%), 상급병원급(11.3%)이 뒤이었다.

경력이 쌓여도 간호조무사들은 최저임금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경력이 3년 이상이거나 5년 미만인 응답자 중 48.6%는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고 답했다. 경력 10년 이상 응답자 중에서는 24.5%가 최저임금 수준이라고 했다. 이 중 6.5%는 최저임금보다 못 받았다.

200만원 이상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

간호조무사 간 임금격차는 크지 않았다. 전형적인 하향평준화다. 기본급 200만원 이상을 받는다고 응답한 간호조무사는 5.5%에 불과했다. 기본급 126만원 미만은 24.3%였고, 39%는 126만원 이상 150만원 미만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간호조무사의 노동조건 개선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 노무사는 “환자의 생명과 직접 연관된 일을 하는데 임금이 지나치게 낮다”며 “4인 이하 사업장인 의원급에서는 시간외수당이나 연차휴가 적용을 제외하고 있어 이들을 보호할 수 있게 근로기준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보건의료노조는 간호조무사 임금이 낮은 이유가 사용자 인식 탓이라고 지적했다. 간호조무사가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이수한 뒤 자격증을 취득하고 있지만 병원 사용자들이 이들의 전문성을 낮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의원급 병원은 자격증이 없는 간호조무사를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영명 노조 정책실장은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모든 병원사업장에서 공통적으로 적용시킬 수 있는 표준근로기준을 마련해 시행해야 한다”며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인상되도록 표준근로기준에 내용을 담아 대한병원협회·대한의사협회 등과 협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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