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실업자가 135만명으로 1999년 8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실업률도 5%로 높아졌다. 청년실업률은 12.3%로 고공행진 중이다. 불황에 미국 금리인상과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의 무역보복까지 겹쳐 상황이 더 나빠질 거라는 우울한 전망이 떠돈다. 지금도 ‘악 소리’ 나는 고용상황이 앞으로 더욱 악화된다는데 사회안전망은 좀체 개선될 기미가 없다. 특별고용지원업종을 지정하고 고용보험급여 상한액을 150만원으로 높이는 정도가 정부 대책의 끝이다. 시급히 확충해야 할 사회안전망은 무엇일까.


돈 받아 낼 땐 정규직처럼, 혜택 줄 땐 알바 취급
김상규 한국마사회시간제경마직노조 법규부장(공인노무사)

▲ 김상규 한국마사회시간제경마직노조 법규부장(공인노무사)

한 사회가 바닥을 드러내는 상황이 발생하면 영향은 그 사회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나타난다. 가장 낮은 곳에서는 공적인 사회안전망이 최소한의 버팀목이 돼야 한다. 그런데 그 벼랑 끝에서 한국 사회 구성원이 만나게 되는 표지판은 ‘각자도생’이다.

벼랑 끝에 선 사람은 대부분 상대적 약자인 여성 혹은 청년들이다. 그 가운데 주당 근로시간 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노동자는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다. 한국에서 노동자로 살아갈 때 최소한의 기준이라고 하는 근로기준법 적용도 제외된다. 연차휴가·주휴수당은커녕 퇴직금조차도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더군다나 기간제법에서도 적용이 제외돼 고용안정 같은 단어는 빛 좋은 개살구다.

실업에 노출된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비빌 언덕인 실업급여도 초단시간 노동자가 혜택을 받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고용보험료를 받아 낼 때만큼은 생업으로 일한다고 간주하고는 강제로 받아 간다.

결국 정부가 돈을 받아 낼 때는 정규직과 평등하게, 혜택을 줄 때는 그저 알바 취급하는 것이 한국 사회 초단시간 비정규직이 처한 상황이다. 물론 가장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비정규직 사용을 철폐하고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나 우선 자본주의 사회 최소한의 기준이라고 하는 근로기준법을 가장 열악한 상황에 처한 노동자에게 적용 제외시키는 황당한 차별은 하루빨리 바꿔야 한다.


고용보험 개혁으로 보편적 복지 이뤄야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실업문제를 단순히 취업의 문제로 보면 한동안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루아침에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경제가 어렵고 일자리 구하는 게 힘들어도 인생은 덜 불행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복지나 사회서비스가 제대로 마련돼야 한다.

고용보험을 손봐야 한다. 현재 고용보험은 세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잔여적이고, 시혜적이며, 퇴행적이다. 고용보험 가입자 중 실업급여나 직업교육훈련 등의 혜택을 받은 사람은 15% 내외다. 나머지 80% 이상은 고용보험료를 내고도 혜택을 받지 못한다. 잔여적 복지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조건 없이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가 이뤄져야 한다. 보험료를 낸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리로서 서비스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산업과 고용의 변화를 제도에 반영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프리랜서와 같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는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까지 법적 테두리 안으로 끌어안는 방향이 모색돼야 한다. 사각지대를 줄이는 방향으로 보편적인 고용안전망이 구축돼야 하는 것이다. 고용보험이 탄생한 지 20년이 지났다. 고용불안을 해소하고 실업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고용보험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공공부문부터 좋은 일자리 만들자
장인숙 한국노총 정책본부 국장

▲ 장인숙 한국노총 정책본부 국장

지난해 통계 사상 처음으로 실업자가 100만명을 넘었고 실업률은 3.7%를 기록했다. 급기야 지난달 실업자는 역대 2월 기준 최고치인 135만명(5%)에 이르렀다. 이것은 통계청 수치일 뿐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으로 분류하면 이보다 3배나 많고, 불완전고용 노동자(초단시간노동)를 포함하면 실질실업자는 600만명 수준을 넘는다. 가히 실업자 천국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정부와 자본은 근본적인 대책은 세우지 않고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기에 바쁘다.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 없이 일방적으로 노동자를 해고하는 구조조정으로 실업자만 대량 양산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라도 국가 차원의 총괄 컨트롤타워 구성, 지역과 업종 차원의 노사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 및 운영, 구조조정 과정에 노조 참여 및 정보제공권 보장으로 다 함께 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실업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가 사용자로서 모범을 보여야만 한다. 우선 공공부문부터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민간영역에서 공공서비스를 담당하는 질 낮은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바꿔야 한다. 한국노총은 좋은 일자리 360만개 만들기 방안을 대선 의제로 제시한 바 있다. 19대 대선 주자들은 립서비스로만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하지 말고, 당선시 즉각 공공부문부터 좋은 일자리 만들기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어쩔 수 없이 실업에 내몰린 노동자를 그나마 보호하려면 사회안전망을 튼튼히 해야 한다. 실업에 직면한 노동자라면 누구나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하고, 까다로운 조건을 완화하고, 금액을 현실화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하청노동자 등 비정규직에 대한 실질적인 보장을 강화해야 한다. 실업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와 자본의 노동통제와 이윤추구에 있다. 노동자의 단결이 더욱 필요한 이유다.


소득공백 때 생계유지 정부가 책임져야
홍원표 민주노총 정책국장

▲ 홍원표 민주노총 정책국장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이 없을 때도 생계를 꾸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보육·의료 등 공공서비스 영역의 일자리를 시장에만 맡기지 말고 국가가 주도해 만들 필요가 있다. 이 같은 공공인프라를 확대하기 위해 연기금 채권투자 방식도 모색되고 있다. 정부가 국민연금에서 초기 투자비를 빌려 쓰고, 국민연금은 정부로부터 이자를 받을 수 있게 돼 안정적인 수익구조가 발생한다는 이점이 있다.

실업부조를 만들고 실업급여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급여 수준을 올려 실업자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건강보험 가입자가 다치면 보험료를 지원받듯이, 실업급여를 납부한 노동자가 어떠한 사유에서든 실업을 겪을 경우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사회안전망이란 소득이 없어 졌을 때 얼마나 버틸 수 있게 사회가 지지해 주느냐를 의미한다. 실업일 때도 문제이지만 다치거나 장애가 생겨 일을 할 수 없게 됐을 때도 정부가 대비해 줘야 한다. 다치거나 질병으로 장기 치료를 받게 될 경우 병원비 부담도 크지만 경제활동 중단으로 가족 생계가 위협받게 된다. 상병수당을 신설해 이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막아 줘야 한다. 현재 정부는 건강보험 총액의 16%가량만 국고로 지원하고 있는데 이를 25% 정도까지 인상해 재원을 마련하면 건강보험의 안정적 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공적연금을 현실화해야 한다. 지금 제도는 노동자 생애소득의 40%가량만 노후에 보장해 준다. 200만원을 받던 노동자가 은퇴하면 80만원을 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너무 보장 수준이 낮다. 40% 수준인 소득대체율을 6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강화해야 한다.


급속한 양적팽창보다 선별적·합리적 복지체계 필요
이상철 한국경총 사회정책본부장

▲ 이상철 한국경총 사회정책본부장

고용한파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지난달 실업률이 5%를 기록했으며 실업자는 동월 기준 역대 최고치인 135만명이나 됐다. 정치 혼란,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등 악재가 중첩되면서 고용 여건이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심각한 실업 문제가 지속되면서 실업자 보호를 위한 사회안전망 확충 요구도 커지고 있다.

실업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사회안전망 확충이 급속한 양적 팽창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기획재정부의 ‘2016~2025년 8대 사회보험 중기재정추계 결과’에 따르면, 실업자 보호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는 고용보험은 불과 3년 후인 2020년부터 당기적자로 전환될 전망이다. 재정건전성이 위협받게 되면 사회안전망이 오히려 취약해질 수 있는 만큼 복지제도의 질적 내실화가 선행돼야 한다.

지출 효율화를 통해 낭비되는 재원을 줄이는 한편, 도움이 꼭 필요한 취약계층에 혜택을 집중하는 선별적·합리적 복지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실업상태에 머무는 것보다 일자리를 가지면 더 큰 보상을 얻도록 하는 ‘일하는 복지’를 통해 근로유인을 제고해야 한다.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도 요구된다. 미취업 청년 등 고용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실업자 보호에 대해서는 정부의 재정적 책임을 강화해 사각지대를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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