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결정했다.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뜨린 국정농단 사태가 결국 대통령 파면으로 귀결됐다.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밝혔다.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박 전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 위배행위'로 대통령직에서 쫓겨났다. 면책특권이 박탈된 그는 일반인 신분으로 검찰 수사를 받을 처지에 놓였다.

◇ 사적이익 추구에 권력남용=박 전 대통령을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린 건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이다. 헌법재판소는 박 전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을 설립하면서 대기업으로부터 각각 486억원과 288억원을 출연받고, 최씨의 사적이익을 위해 지위와 권한을 남용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두 재단법인의 운영에 관한 의사결정은 피청구인과 최서원(최순실)이 했고, 재단법인에 출연한 기업들은 전혀 관여하지 못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나아가 박 전 대통령이 최씨에게 자동차 부품회사인 KD코퍼레이션의 대기업 납품 부탁을 받고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시켜 현대자동차그룹에 거래를 부탁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안 전 수석을 통해 현대차그룹에 최씨 소유 플레이그라운드 소개자료를 전달했고, 현대차와 기아차는 플레이그라운드에 9억여원의 광고를 발주했다.

헌법재판소의 이 같은 판단은 박영수 특검이 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한 혐의와 일치한다. 특검은 박 전 대통령에게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와 강요죄 등 8개 혐의를 추가로 적용했다. 최씨와 안 전 수석의 범죄사실 중 △대기업에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강요 △현대차에 지인 회사 11억원대 납품계약, 최씨 소유 플레이그라운드 71억원 광고 발주 압력 △롯데에 K스포츠재단 70억원 추가 출연 요구 △포스코그룹 펜싱팀 창단 강요 혐의에서 박 전 대통령을 공범으로 적시했다.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의 행위는 최서원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써 공정한 직무수행이라고 할 수 없다”며 “피청구인의 헌법과 법률 위배행위는 재임기간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국민 생명권 보호의무 어디까지=박 전 대통령 탄핵사유 중 세월호 참사 관련 생명권 보호의무가 탄핵사유로 인정되지 않은 것은 한계로 지적된다.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 보호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행사하고 직책을 수행해야 하는 의무를 부담한다”면서도 “세월호 참사 당일 피청구인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했는지 여부는 탄핵심판 판단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은 세월호 참사 관련 소추사유에 대한 보충의견에서 "피청구인은 위기에 처한 수많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심도 있는 대응을 하지 않았다"며 "국가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이 상황을 지휘하는 것은 실질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효과도 갖는다"고 밝혔다.

헌법과 국가공무원법을 위배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두 재판관은 “국가 최고지도자가 국가위기 상황에서 직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해도 무방하다는 그릇된 인식이 우리의 유산으로 남겨져 수많은 국민의 생명이 상실되고 안전이 위협받아 이 나라의 앞날과 국민의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불행한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세월호 참사 탄핵사유 불인정 '한계'
보충의견 "직무 불성실 무방하다는 건 아냐"


◇검찰, 강제수사 할까=검찰 특별수사본부의 박 전 대통령 수사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에서 나온 박 전 대통령은 서울 삼성동 사저에 머물며 검찰 수사를 받을 전망이다.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뇌물수수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13개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검찰 수사와 올해 특검 수사에 모두 불응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을 내림에 따라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조사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강제수사를 할 수 있다. 체포영장 발부도 가능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직접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이미 피의자로 입건된 박 전 대통령 구속 여부도 관심 대상이다. 검찰이 증거인멸 가능성을 우려해 박 전 대통령을 구속기소할 수도 있다. 이와 함께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됨에 따라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낸 대기업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헌법재판소까지 언급한 현대차와 롯데 관련 수사는 불가피해 보인다. 뇌물공여 혐의를 받고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됐다.

◇청와대 문건 유출부터 탄핵까지=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지난해 9월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최순실씨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운영에 개입한 정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부터다. 지난해 10월24일 JTBC가 최씨 소유 태블릿PC를 공개하며 의혹이 확산했다. 박 전 대통령은 걷잡을 수 없이 논란이 번지자 다음날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는 “최순실씨에게 정권 초기 조언을 들었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곧 거짓으로 드러났다.

같은달 27일 검찰은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국정농단 의혹 수사에 들어갔다. 이틀 뒤 첫 대규모 주말 촛불집회가 열렸다. 국민은 박 전 대통령 하야를 요구했다. 박 전 대통령은 11월3일 최씨가 검찰에 구속되자 다음날 2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필요하다면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라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약속했다.

박 전 대통령의 약속은 지난달 28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수사를 종료할 때까지 지켜지지 않았다. 헌법재판소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11월29일 3차 대국민 담화를 내고 “여야 정치권이 합의해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주시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국민은 탄핵을 요구했다. 촛불집회 규모는 갈수록 불어났다. 촛불민심에 흔들리던 국회는 결국 지난해 12월9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박 전 대통령은 올해 1월1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탄핵소추 사유를 전면 부인했다. 헌법재판소는 국회 탄핵안 의결 92일 만에 파면을 결정했다. 박 전 대통령 임기는 취임 1천475일 만에 강제 종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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