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기사 문장이 “논란이 일고 있다”거나 “알려졌다”로 끝나면 십중팔구 픽션이거나 취재가 덜 된 거다. “알려졌다”는 서술어는 “그럴지도 모르지만, 잘 모르겠다”가 정확한 뜻이다. 그래서 데스크는 이런 서술어를 보면 취재기자에게 “너한테만 논란이지” 혹은 “너한테만 알려졌지”라고 다그친다.

이런 기사 문장은 ‘주어’가 없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조선일보 2월4일 10면 <촛불집회 주최 ‘퇴진행동’의 反美 본색>이란 제목의 기사가 바로 이런 문장으로 이뤄져 있다. 고작 8문장짜리 짧은 기사인데 제목은 4단으로 비중 있게 처리했다. 이 기사의 첫 문장은 촛불집회 주최측이 사드 배치에 반대하며 한·미 고위급 대화중단을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로 끝난다.

세 번째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이들(퇴진행동)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비판을 넘어 '반미 같은 좌파 성향을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문장의 주어는 ‘이들(퇴진행동)’로 보이지만 서술어 ‘지적이 나오고 있다’와 호응하지 않는다. 퇴진행동이 이런 지적을 할 리 없다. 따라서 이 문장은 주어와 서술어가 호응하지 않는 비문(非文)이다. 이런 지적을 하는 숨어 있는 주어는 누굴까. 퇴진행동이 반미 성향을 드러냈다고 지적하는 이는 누굴까.

일곱 번째 문장도 황당하다. "퇴진행동의 주장에 대해 '진보 단체들이 촛불 민심을 악용해 한·미 동맹 흔들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기사 문장에서 쌍따옴표는 화자(話者)의 말을 직접인용할 때 쓴다. 그런데 이 문장의 화자는 어디로 간 걸까. ‘~에 대하여’가 주어처럼 문장 맨 앞에 배치된 이렇게 황당한 비문(非文)을 쓰다니.

20여년 전 사건기자 때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고 서술어를 쓰면 시경캡이 늘 이렇게 나무랐다. “잇따르기는 뭐가 잇따라! 너 혼자 비판하는 거겠지.”

나 혼자만의 비판이 아닌 대다수의 비판임을 보여 주기 위해 이런저런 화자들을 불러 모으려고 애썼다. 그래도 일부만의 비판이면 그 아이템은 버려야 한다. 그래야 기자라고 배웠다.

이 기사의 마지막 여덟 번째 문장에 와서야 퇴진행동의 사드 배치 반대를 비난하는 화자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딱 한 번 등장한다. ‘촛불집회에 여러 차례 참석했다는 회사원 박아무개(52)씨’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대통령이 탄핵되더라도 한·미 동맹은 결코 깰 수 없는 안보의 근간이고 촛불 민심 운운하며 사드 배치 등을 반대하는 것이야말로 촛불을 든 일반 시민들에 대한 모욕이자 월권”이라고.

국민 80%가 탄핵에 찬성하는 판에 촛불집회에 나온 시민이 이런 생각(사드 찬성)을 하지 말란 법은 없다. 반대로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촛불 시민도 얼마든지 있다. 결국 이 기사는 일반화의 오류에 빠졌다.

스트레이트 기사에 이런 주장을 담는 건 무리다. 누가 봐도 화자는 기자 자신이다. 희망사항을 보도기사로 쓸 순 없다.

그렇게 그 아이템에 욕심이 나 포기하기 싫으면, 퇴진행동 안에서 사드 배치 찬성론자를 찾거나 최소한 사드 반대 기자회견을 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말하는 단체라도 찾아야 한다. 퇴진행동에 무려 1천500여개 단체가 들어와 있는데.

조선일보는 이런 황당한 스트레이트 기사에 기대어 같은날 '반미 본색 드러내는 촛불 주도 세력, 시민이 쫓아내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