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약으로 내건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가 논란이다. 소방관·경찰·사회복지 공무원을 대폭 늘리고, 공공부문 비정규직·간접고용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직접고용하며, 민간이 대행하고 있는 공공서비스를 직접 정부가 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81만개라는 구체적 수치도 제시했다. 전체 노동자 중 공공부문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21%인데 우리나라는 8%밖에 되지 않으니, 국제기준으로 봐도 충분히 공공부문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공약에 쏟아지는 비판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은 재정부담론이다. 보수언론은 문 전 대표가 단순하게 계산한 일자리 비용은 실제와 상당히 다르다며, 공무원 평균근속 27년 동안 계속 상승하는 호봉인상분과 연금 부담까지 감안해 실제 인건비를 계산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렇게 실제 인건비 지출을 산정하면 재정부담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난다는 것이다. 보수진영의 공공부문 확대에 대한 오래된 비판 논리다.

재정부담론에 대한 개혁진영의 일반적 반론은 소득-성장-세입의 선순환론이다. 일자리가 늘어 소비가 증가하면, 경제 전체가 성장하니 정부 세입도 증가한다는 것이다. 시차가 있긴 하지만 재정부담은 늘어나는 세입으로 결국 해결된다. 일부 논자는 재정부담으로 정부 부채가 조금 늘어나는 것도 크게 염려할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국의 국가부채는 OECD 평균과 비교해서도 꽤 낮은 편이라는 것이 그 근거다.

그런데 개혁진영의 이런 반론은 다소 문제가 있는 것이다. 현재의 생산성 추이나 인구 추이를 볼 때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높게 쳐 봐야 2%대에 불과하다. 정부가 조금 괜찮은 일자리를 늘린다 해도 대세에 영향은 없다. 세계경제 전체가 장기 저성장에 빠져 있는 현재 선순환에 대한 낙관은 우리나라를 남유럽 국가들 같은 재정·경제위기 상황으로 내몰 수도 있다. 정부 부채 증가도 마찬가지다. 통화가 불안정한 나라에서는 달러·유로·엔과 같은 기축통화를 사용하는 국가들처럼 부채를 크게 늘릴 수 없다. 원화는 세계적으로도 변동성이 가장 큰 통화 중 하나다. 저성장 속에 국가 부채가 증가하면 원화에 대한 시장의 불안이 커질 것이다. 세계적으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떠도는 투기자금이 최근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니, 더욱 위험하다.

필자 생각에 공공부문 사회서비스와 일자리에 대한 책임성은 강한 금융시장 규제와 소득 재분배 정책을 전제해야 한다. 저성장 국면에서 공공부문의 사회적 책임 강화는 불가피하게 정부의 재정부담과 부채 위험을 증가시킨다. 그런데 한국의 개방된 규제 없는 금융시장은 정부의 이런 위험부담을 매우 싫어한다. 정부에게 언제나 국민과 금융자본 중 누구를 선택할지 강요하고, 정부는 대체로 나라 경제 전체를 휘청거리게 만들 수도 있는 금융자본의 요구에 굴복했다. 현재와 같은 무규제 금융시장에서는 아마도 문 전 대표의 공공 일자리 정책도 마찬가지 신세가 될 것이다.

성장이 없다면 정부 세입을 늘리는 방법은 현재의 부와 소득에 대해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수밖에 없다. 81만개의 공공 일자리는 정부 적자로 일부 감당한다 하더라도 세입 증가를 동반하지 않을 수 없다. 생산과 관계된 주체에게 세금을 더 걷는 것은 저성장 상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세금을 더 걷는다면 그것은 비생산적인 사람들, 즉 하는 일에 따라서가 아니라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야 할 것이다. 부동산 같은 비생산적 자산과 임대료 같은 소유권으로부터 얻어지는 소득이 1차 대상이어야 한다.

약간 다른 시각에서 문 전 대표의 일자리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사회서비스 부문의 공공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필요하나, 그 전에 공공부문 고용과 임금을 유연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우리나라가 OECD 평균보다 공공부문 일자리 비중이 낮은 것은 이전 정부들이 일부러 고용을 피해서가 아니라 공공 일자리가 지나치게 고임금에, 해고가 어려워 작심하고 예산을 늘리지 않으면 쉽게 일자리를 늘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근거다. 우리나라 공공부문은 일자리 숫자의 비중은 OECD 평균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지만, 일반 정부지출 중 임금비용 비중은 OECD 평균과 비슷하다.

필자 생각에 이는 한국 노동시장의 일반적 상황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한국 노동시장의 문제점은 공공부문 과보호가 아니라 민간부문 무보호다. 우리나라 민간부문의 평균 근속기간은 5년에 불과하다. 노동시장 유연화가 최고로 많이 이뤄졌다는 미국이 10년이다. 청년들이 공무원이 되기 위해 몰리는 이유도 바로 이런 민간 노동시장의 지나친 불안정성 탓이다. 또한 문 전 대표가 일자리 정책에서 침묵하는 것이기도 한데, 우리나라의 일자리 정책의 핵심은 사실 노동시장을 재규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공공부문은 어떤 점에서 노동시장의 대피소라 할 수 있다. 민간 노동시장은 재난 상태다. 재난을 막아야지 대피소만 늘리는 게 답일 수는 없다.

요컨대 공공부문 일자리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금융시장 규제 강화, 불로소득에 대한 세금 강화, 노동시장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 금융시장 규제를 풀고, 자산소득에 대한 세금을 감면하고, 노동시장 규제를 철폐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민주당 정부 10년간 추진한 것들이기도 하다. 문재인 전 대표가 공약을 지키려면 지난 민주당 정부 정책을 비판적으로 재평가하고, 모두 뒤집어야 할 것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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