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노동조합 가입을 강제하는 법이라도 만들어야 합니다.”(일진전기노조 위원장)

“지역 밀착형 노동정책을 제대로 집행하기 위해서라도 지방노동청장을 직선제로 뽑아야 합니다.”(바이엘코리아노조 위원장)

“4차 산업혁명이 코앞인데 정부는 과연 무엇을 했습니까.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새로운 일자리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삼민산업노조 위원장)

지난주 한국노총 안산지역에서 열린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 주최 '근로시간단축의 쟁점과 과제 정책토론회'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필자는 토론자로 참석했다. 토론회 후 참석자들은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대한 미시적인 문제부터 우리나라 노동현장 실상까지 현장 조합원들은 잘 알고 있었다. 발제자나 토론자 그 누구보다도 말이다. 2017년 봄, 노동현장을 그대로 전해 줬다.

“국회에서 하는 토론회는 대표자 중심일 수밖에 없다. 참석해 봐야 주최하는 쪽하고 눈 맞추고 가는 정도다. 게다가 무슨 의원 인사는 뭐 그리도 많은지.”

국회나 여의도에서 국회의원이 주최하는 토론회는 흡사 무슨 축하연이 되기 십상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그런 허례는 없었다. 반월시화지역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들을 수 있는 훌륭한 토론장이었다.

근로시간단축을 보는 노동자들의 눈은 날카로웠다. 발제자와 토론자는 “노동운동의 역사가 바로 근로시간단축의 역사”라거나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1·2위를 다툴 만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므로 근로시간단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누구나 알고 있는 소리만 반복한 것 같다.

현장 노동자들은 달랐다.

“노동시간단축을 쉽게 말하지 말라. 반월시화지역 조합원들 모두가 노동시간단축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토론자로 나선 노루케미칼노조 위원장의 발언이다. 노조 위원장은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결국 이득을 얻는 자는 기업 아닌가? 과연 대기업 3·4차 벤더가 많은 우리 지역에서 노동시간을 곧장 단축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상해 봤느냐?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사용자는 분명 노동시간단축을 명분으로 조합원들이 하던 연장근로를 합법적으로 없앨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우리보다 더 나쁜 일자리, 이른바 비정규 노동자로 메울 게 아닌가. 이게 국회와 정부가 할 일은 아니지 않는가?”

토론자로서 부끄러움이 한없이 밀려왔다. 노동시간 문제를 나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좋아질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정작 현장 노동자들이 무엇을 불안해하는지는 고민하지 않았다.

현장은 과연 한국노총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이들에게는 한국노총과 토론자가 또 하나의 벽창호는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아무리 소리 질러도 말귀조차 알아듣지 못하는 정부나 사측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더 깊이 공감해야 함에도 “임금 저하 없는 근로시간단축”만을 앵무새처럼 외치는 모습에 이미 오래전에 희망을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찔했다. “한국노총에서 대부분 시간을 조합원들의 어려움을 구제해 준다는 생각으로 일해 왔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오늘 이 자리가 깨닫게 해 줬습니다. 당연히 알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총연맹 간부의 일원으로서 현장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현장에 와서 듣도록 노력하겠습다”라는 변명으로 마무리 발언을 했다.

토론 후 며칠이 지났다. 토론 주제에 대한 나름의 답도 찾아봤다. 노동시간단축이 노동자의 행복이라는 단순도식은 좀 미뤄야겠다. 노동현장의 목소리는 노동시장을 포함한 사회구조를 함께 바꾸지 않는다면 노동시간단축은 불가능하거나 역효과만 날 뿐이라는 것이다. 해서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노동자와 기업이 만들어 낸 전체 부가 골고루 돌아갈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게 우선이다.

물론 노동조합이, 특히 양대 노총이 그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노동조합 주변의 객관적 여건은 그 어느 때보다 낫다. 외환위기 이래 20년간 국가위기를 이유로 만들어졌던, 노동시장 양극화를 악화시켰던 제도부터 없애야 한다. 정리해고법이나 파견법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일을 해낸다면 현장 노동자들은 자연히 노동조합과 함께할 것이다. 다 알겠지만 이번 봄이 적기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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