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LG전자 서비스센터 AS기사들이 제품 수리를 맡긴 고객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설정을 임의로 변경해 특정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지 못하게 '스팸' 설정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전화번호뿐만 아니라 특정 단어가 들어 있는 문자는 스팸문자로 분류됐다. 일부 기사의 일탈 행위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전자제품 서비스업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리 맡겼더니 '지니' '스센' 등 단어 스팸 설정

이런 사실은 LG전자서비스센터에서 스마트폰을 수리한 고객이 문자메시지 스팸설정에 자신이 등록하지 않은 번호가 저장돼 있는 것을 발견하면서 불거졌다. 이를 한 인터넷 커뮤니티사이트에 올리자 비슷한 경험을 호소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스팸설정된 단어는 '지니'(엔지니어)나 '스센'(서비스센터), '7777'(LG전자서비스센터 대표번호 1544-7777) 등으로 다양했다. 수리를 받은 뒤 서비스만족도를 묻기 위해 회사가 보내는 문자메시지에 들어가는 주요 단어들이다. 이 때문에 만족도평가 문자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 경품문자 등도 수신이 거부돼 받지 못한 것 같다는 소비자 불만이 이어졌다. 논란이 확산될 즈음 삼성전자 휴대전화 사용자 중에도 '3366'(삼성전자서비스센터 대표번호 1588-3366)과 같은 차단문자가 설정됐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대부분 전자제품 수리업체는 고객들의 만족도를 묻기 위해 문자메시지를 보내 평가해 줄 것을 요청한다.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한 피드백 과정이다. 그런데 왜 서비스 기사들은 문제가 될 게 뻔한 데도 고객 휴대전화 설정을 바꿨을까. 노동계는 '해피콜'이라는 이름의 서비스업계 고객만족도 확인 시스템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고객만족도 조사가 수리기사 실적 압박용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고객만족 점수 낮게 받으면 인센티브·고용 불이익

고객만족도 조사 문제는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지회장 라두식) 설립 전후 널리 알려졌다. 삼성전자서비스기사들은 고객만족도 점수가 10점 만점이 아닌 8점과 9점만 돼도 고객이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간주해 대책서를 쓰게 했다. 일종의 자아비판서다. 업무를 하지 못하게 하거나 조기 출근을 시키는 방식으로 벌을 줬다. 수리실적에 따라 급여 차이가 나는 상황이라 업무를 하지 못하면 타격이 크다. 심지어 주말에 회사 관리자와 함께 억지 산행을 가게 한 뒤 산 정상에서 목표 점수를 외치고 앞으로 열심히 일하겠다는 다짐을 받기도 했다.

고객만족도 점수는 고용 문제와도 직결된다. 점수가 낮은 대리점은 재계약시 불이익을 주거나, 대리점 사용자가 교체될 때 기사의 고용승계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기사들이 고객들에게 "평가점수는 만점으로 부탁드립니다" 하고 호소하게 만드는 이유다. 지회 관계자는 "삼성전자·LG전자 등 대부분 전자제품 수리업계에서 이 같은 시스템이 고착화돼 있다"며 "몇몇 기사 개인의 문제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서비스 체계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회에 따르면 전국 삼성전자서비스센터 중 조합원이 있는 곳에서는 고객 휴대전화 설정을 바꾸는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 라두식 지회장은 "만족도 점수에 따라 실적을 나누거나 징계하지 못하도록 지회가 강하게 요구하면서 실적 압박에 대한 방어막이 어느 정도 생겼다"며 "조합원이 없는 센터나, 아예 노조가 없는 LG전자서비스는 회사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없어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고객만족도 조사로는 불만 제대로 수용 못해"

고객만족도를 조사하는 제도가 없어지거나 약화되면 서비스 품질이 저하되거나 기사들이 불친절하게 대응하지는 않을까. 울산에서 휴대전화 수리기사로 일하는 최아무개씨는 "절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고객만족도 시스템은 고객의 불편사항을 청취하고 이를 개선시키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며 "센터와 수리기사에게 불이익을 주는 구조라 우선 높은 점수를 받으려고 고객에게 만점을 읍소하거나 스팸설정 같은 꼼수를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객 불편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 개선해 나가는 것이 서비스품질을 높이는 방법"이라며 "기사들은 수리를 제대로 마무리하고 인정받겠다는 자긍심으로 일한다"고 덧붙였다.

서비스를 계량하는 데 집중해 실제 고객만족도의 변별력을 상실한 만큼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기술노동자를 감시하는 기능으로 전락한 서비스만족도 측정을 폐기·개선해 고객의 고충을 제대로 수용하고 기술노동자의 부족한 점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며 "노동인권은 없고 소비자 권리만 강조하는 풍토를 바꾸려는 사회적 노력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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