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민영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재심사가 기각됐다.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청구에 대해 산업재해보상보험 재심사위원회는 재해발생 직전 3개월 동안 1주 평균 피재자의 근로시간이 60시간에 미달한다는 기각사유를 들었다. 고용노동부 고시와 공단 판정지침에 미달한다는 것이다.

재해를 당한 사람은 중국 현지 조선소에 파견돼 선주사 발주 선박이 도면에 맞게 제대로 건조될 수 있도록 조선소 현장에서 용접 상태, 조립 상태 등을 관리·감독하는 신조감리로 근무했다. 선박 건조공정을 직접 관리·감독해야 했기 때문에 사무실보다는 조선소 현장을 이동하면서 작업 상태를 확인하고 현지 작업자에게 일을 지시했다.

그런 피재자가 중국 현지근무 1년10개월 만에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사망 당시 그는 침대에 엎드려 있었고, 머리맡에는 노트북이 켜져 있었다. 어제까지 문제없이 통화를 하던 그가 갑작스럽게 숨지자 유족들은 시신을 인도해 한국에서 부검을 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죽은 지 한 달이 지난 상태에서 이뤄진 부검임에도 급성심장사 가능성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피재자는 재해발생 직전 3개월 전에 완성된 선박의 시운전과 인도를 위해 조선소가 변경되면서 음식·기후가 전혀 다른 곳으로 근무장소가 바뀌었다. 갑작스러운 근무 장소 변경에 적응할 틈도 없이 시운전 준비에 투입됐다. 직접 시운전에 참여해 발견한 선박의 문제점을 해결한 뒤 선박을 인도하기까지 54일 동안 52일을 연속으로 근무했다.

퇴근 이후에는 조선소 현장에서 발생한 문제와 공정 상황 등을 정리한 보고서를 작성해 상급자에게 보고하는 업무까지 수행했다. 당시 중국 현지에는 별도의 출·퇴근기록이 없었지만, 동료 감독들의 진술과 추가 자료를 통해 피재자의 과도한 근로시간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원처분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은 조선소 현장에서의 근로시간만을 가지고 사건을 판단했다. 재해발생 직전 3개월 동안 1주 평균 피재자의 근로시간이 60시간에 미달했다는 이유만으로 54일 동안 52일을 연속 근로한 사실, 근무장소가 급격하게 변경된 사실, 피재자가 중국 파견 직전 건강검진에서 혈압·혈당·콜레스테롤 수치가 모두 정상이었고 심장 관련 기존질환도 없었다는 사실 등을 모두 무시한 채 업무상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버렸다.

특히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판정 내용 중 1년8개월 동안의 선박 건조를 마치고, 완성된 선박을 먼 해상으로 옮겨 선주사에 인도하기 전에 4박5일 동안 밤낮없이 검사하고 측정하는 선박 시운전을 '통상 업무'라고 판단한 부분에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산업재해보상보험 재심사위원회도 마찬가지였다. 고시와 공단 판정지침에 따라 피재자의 근로시간이 미달한 것만 봤다. 피재자의 과로·스트레스 요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판례는 이미 노동부 고시는 예시규정에 불과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확한 업무시간이 파악되지 않는 경우에는 단순히 업무시간만을 기초로 제정된 고시를 기계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고 밝히는 등 근로시간만을 과로 인정의 절대적 기준으로 삼고 있지 않다.

근로시간 외에도 근무강도·작업환경·출근일수 등 과로 요인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다양하다. 고시와 공단 판정지침에 매몰되지 말고, 근로시간 외에 업무량·작업 환경·건강 상태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상당인과관계에 따른 판단을 해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