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의 문턱이 이다지 높은지 몰랐다. 금속노조는 지난 20일 중앙위원회를 열어 전국자동차판매노동자연대노조의 상급단체 가입 문제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금속노조 내부 조직 간 이견을 좁힌 뒤 가입 문제를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사실상 문전박대다.

판매연대는 현대·기아자동차를 판매하는 대리점 소속 특수고용 비정규직 영업사원들이 결성한 조직이다. 2015년 노조를 만든 이들은 지난해 5월 총회를 열고 금속노조 가입을 결정했다. 그런데 현대·기아 직영점에서 일하는 정규직으로 구성된 현대차지부 판매위원회 등이 이들의 가입을 격하게 반대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대략 이렇다. 현대차를 비롯한 완성차업계는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 일환으로 대리점제를 도입했다. 대리점 직원과 정규직은 판매실적을 두고 경쟁하는 앙숙으로 전락했다. 20여년간 현장에서 반목했다.

판매 정규직들은 대리점제를 폐지하라고 요구한다. 대리점이 늘어나면 고용이 불안해지고 판매실적이 떨어져 임금이 감소한다는 주장이다. 판매 정규직과 대리점 비정규직의 이해가 상충하는데, 이에 대한 대책부터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판매 정규직들이 판매연대의 금속노조 가입을 막는 이유가 구차하다. 대리점제는 자동차 자본의 이이제이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정규직·비정규직을 갈등·경쟁시키기에 대리점만큼 좋은 제도가 없다.

예컨대 대리점을 앞세워 정규직 파업을 제한할 수 있다. 기본급 없이 수수료만으로 먹고사는 비정규직을 저임금으로 내몰면서 판매실적에 매달리도록 강요한다. 정규직 대신 대리점을 폐쇄하는 방식으로 손쉽게 고용유연화를 달성한다. 현대·기아차를 파는 비정규직만 전국에 1만여명에 달한다. 금속노조 일개 지부의 힘으로 대리점제를 폐쇄시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노동계는 특수고용직 고용안정·처우개선을 위해 노동 3권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특수고용직 확산을 막지 못한 현실을 직시하고, 그들이 자본을 상대로 스스로 투쟁해서 권리를 쟁취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현대차지부 판매위는 중앙위 개최 전 판매연대와의 간담회에서 "차라리 서비스연맹에 가면 되지 않겠느냐"고까지 밝혔다. 민주노총 조합원들끼리 현장에서 반목하고 싸워도 괜찮다는 말인가.

중앙위 결정으로 인해 판매연대는 현대차지부 판매위가 제기한 우려를 말끔히 해소하는 대책이 수립되지 않는 한 금속노조 가입이 어렵게 됐다.

금속노조 규약·규정상 판매연대 같은 집단가입은 중앙위 결정사항이 아니라 위원장 전결사항이다. 의견을 수렴한다는 이유로 중앙위로 논의를 넘긴 노조 집행부의 잘못도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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