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동훈 공인노무사(노무법인 현장)

1. 그는 대표이사의 위임을 받은, 자신보다 상급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그럼에도 꼬박꼬박 월급을 받고 있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다. 그는 근로제공 장소인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은 날이 많았다. 회사 내 기밀정보를 회사 밖 지인들과 공유하며 지인과 지인의 자식들, 지인의 친구 아비어미 회사들에 막대한 부와 권력을 누리도록 했다. 그리고 편 가르기를 했고, 어느 편인지에 따라 잔인하거나 관대했다. 그의 부당한 행위들로 인해 회사는 풍비박산 직전에 이르렀고, 그의 부당한 결정들은 수많은 피해자를 낳았으며, 그 피해자 중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결국 대표이사는 감사를 지시했고, 인사위원회 회부를 결정하면서 그를 대기발령했다. 그러자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억울한 징계절차를 중단하라며 대표이사실과 감사실 앞에서 시위를 이어 갔고, 그는 감사나 인사위원회 출석을 거부했다. 온갖 기밀을 누설하고서도 또 다른 기밀을 조사 거부 이유로 삼았다. 전례 없는 행동을 하고서도 전례가 없음을 이유로 조사를 거부했다. 그의 편에 있던 자들은 외근을 핑계 삼거나 연차휴가를 사용하면서 감사나 인사위원회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드러나기 전까지 징계사유 일체를 부인했고, 드러난 사유에는 엉뚱한 제보자의 불륜이나 개인적 사정을 들이대며 물타기를 시도했다. 대표이사는 그의 차고 넘치는 부정행위를 조금씩 알게 됐고, 징계절차와는 별개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으며, 검찰은 그의 주변을 떠돌던 측근들과 지인들 중 상당수를 구속하거나 범죄혐의를 확인했다.



2. 그럼에도 그가 사내 이메일이나 측근 인사들을 통해 일방적으로 유포하고 있는 변명이란 것은 대체로 이런 것들이었다. 무단결근이나 재택근무의 징계사유는 부당하다. 나는 아침에 눈 뜨고 저녁에 눈 감기 전까지 오로지 회사 걱정과 회사 일만 생각했다. 집에 서재가 따로 있고, 서재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다 했다. 내가 존재하는 곳이 곧 근로제공 장소다. 받아야 할 보고는 보고받았고, 지시해야 할 지시는 지시했다. 근무시간 중 미용실을 다녀온 적은 있지만, 그저 20분 정도 걸렸을 뿐이다. 마치 내가 그 시간에 백화점 쇼핑을 다니고 드라마를 시청했다는 어마어마한 거짓말과 허황된 주장이 있는 것만 봐도 다른 징계사유 일체가 근거 없다는 방증이다.

재직 중 업무상 지득한 비밀 누설의 징계사유는 부당하다. 지인에게 회사의 기밀자료를 보낸 적은 있지만, 그 또한 회사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더 꼼꼼히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지인과 지인의 자녀를 인사팀에 추천한 적은 있지만, 추천이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추천받았다고 딱 되는 것은 아니고 검증을 통해 잘할 것 같다는 사람을 선택한 것이다. 우연히 한 사람과 관련한 사람들과 회사들이 혜택을 누리긴 했지만 그건 하늘의 기운에 따른 것이거나, 그들의 간절한 염원 때문이다.

회사 이익에 반해 자기의 영리행위를 하거나 타인에게 부당한 이익을 줬다는 징계사유는 부당하다. 나는 누구를 봐줄 생각은 털끝만큼도 머릿속에 아예 없는 사람이다. 지인 딸의 친구의 아버지에게 도움을 준 것은 전체 협력업체와의 공생과 상생을 위한 조치였다. 지인이 협력업체로부터 받은 막대한 부는 개인적 일탈을 일삼은 지인을 제대로 알지 못한 내 부덕이고 불찰일 뿐이다.

품위를 유지하지 못하고, 회사 명예를 손상했다는 징계사유는 부당하다. 감사팀이나 인사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 예정인 자들이 외부출장을 가거나 연차휴가를 사용한 것은 모르는 일이다. 조사와 출석을 거부하거나 방해한 것은 감사와 인사위원회의 편파성 때문이다. 내 편에 있던 자들 다수가 같은 사유로 징계를 받고 해고를 당하며 그 과정에서 협력업체와의 비리가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다수가 구속됐지만, 그걸 모두 나와 엮는 것은 엮어도 너무 엮은 것이다.

업무 태만과 불성실, 소행이 불량하거나 회사 내 풍기질서를 문란하게 했다는 징계사유 역시 부당하다. 입바른 소리를 하는 자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고, 그들에게 승진이나 인사평가에서 불이익을 준 것은 나쁜 사람들에 대한 정당한 인사권 행사였다. 그리고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생긴 사고가 그렇게 큰 사고였는지는 나중에 알았다. 7시간 뒤, 직접 회사에 나가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나. 그로 인한 죽음까지 내 책임이라 할 수 없다. 내 편에 선 자들이 탄원서를 제출하고, 징계 반대와 철회를 주장하며 시위하는 걸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 나를 해고하라는 95% 직원들의 주장은 빨갱이거나 노조가 주도하고 있는 것이니 현혹되지 말라. 그들 중 최초 유포자는 불륜을 저지른 자의 말이니 믿을 것이 못 된다. 징계사유의 입증책임은 회사가 부담하는 것이니, 입증되지 않은 모든 징계사유들은 그래서 부당하다. 징계사유 모두가 거짓말로 쌓아 올린 거짓말의 산이고, 오래 전부터 기획하고 관리한 세력이 있는 느낌이다.



3. 그 회사의 취업규칙상 징계양정기준 중 비위 정도가 심하거나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고를 징계의 종류로 규정하고 있고, 징계양정을 판단함에 있어 반성의 기미를 참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모든 사유 전부, 그 일부라도 정당하다면 징계양정은 어떠해야 할까. 이 모든 사유, 그 일부의 사유로 해고된 노동자는 노동위원회나 법원으로부터 구제받을 수 있을까. 그래 왔던가? 전부의 전례는 없지만, 일부들의 전례는 차고도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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