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년 새 우체국 집배원 6명이 돌연사했다. 충남 아산시 영인우체국 소속 집배원 조아무개씨가 숨진 채 발견된 것은 지난 6일. 동맥경화에 따른 심정지가 사망 원인이었다. 조씨를 포함해 지난해 돌연사 한 집배원 다수는 장시간 노동이 원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20명의 집배원이 소속된 영인우체국은 2명의 결원이 생기면서 집배원의 업무량이 폭증했다. 조씨는 휴일에도 출근해 우편물 분류업무를 했고, 평일에는 결원한 동료 구역을 책임졌다. 살인적 업무를 견뎌 낸 조씨는 퇴근한 후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세 아이의 엄마였던 보건복지부 김아무개 사무관도 같은 증세인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지난달 15일 김씨는 자신이 일하던 보건복지부 세종청사 내 계단에 쓰러져 숨진 채 발견됐다. 셋째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했던 김씨는 복귀하자마자 주 7일 근무를 했다. 김씨는 새벽 출근과 야근, 장관 보고와 서울 출장이라는 강행군을 했다. 숨진 당일인 일요일에도 김씨는 아이들과 놀 작정으로 새벽 5시에 출근했다가 변을 당했다. 30대 워킹맘의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일반인들에겐 공무원은 오전 9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하는 ‘철밥통’으로 여겨졌다. 이런 통념은 깨진 지 오래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공무원 노동시간은 연간 2천200시간에 달한다. 기능직 공무원인 집배원의 경우 정규 노동시간은 연간 2천233시간에 달한다고 한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가 평균 노동시간은 1천749시간이다. 장시간 노동은 고질적인 인력부족과 경직된 업무관행 탓이다. 집배원의 경우 정상 근무를 전제로 하면 23%의 증원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출산한 여성 공무원의 모성보호시간 활용률은 30%에 머물 정도로 직장문화도 경직적이다.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공공부문 일자리 대책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불을 당겼다. 차기 정권이 노동시간단축과 일자리 창출을 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소방관·경찰·사회복지 공무원 등 81만개의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제안했다. 공공부문 일자리의 경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국가 평균이 23.1%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7.6%에 불과하다.

문 전 대표의 제안은 당 안팎에서 비판이 제기됐다. 이 제안을 실현하려면 수십조원의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제단체도 논쟁에 가세했다.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은 지난 9일 최고경영자 연찬회에서 “돈 벌어 세금 내는 일자리가 늘지 않는데 돈 쓰는 일자리가 얼마나 오래 지탱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문재인 전 대표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정치권이 재원 마련을 거론했다면 박 회장은 공무원 증원 자체를 회의적으로 본 셈이다.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민간기업의 규제를 푸는 일에 정치권이 앞장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 회장의 주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현재 정부의 재정사정과 쓰임새를 고려했을 때 급격한 공무원 증원은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박 회장의 해법을 선택하는 것도 곤란하다. 규제를 완화하면 일자리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간 기업들은 국내 일자리 창출엔 인색한 반면 해외투자에 열성이었다. 박 회장의 공식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효험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되레 규제완화는 정부와 기업의 부정한 결탁을 초래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그 방증이다.

우리나라는 저성장과 경기침체라는 쌍둥이 위기에 처해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정치적 불확실성도 크다. 그야말로 비상상황이다. 차기 정부는 고용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돈을 쓰더라도 사람을 살리는 일자리 창출에 써야 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부족한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비효율적인 것이 아니다. 멀쩡한 강바닥을 파거나, 신기루 같은 해외자원 개발에 혈세를 쏟아 붓는 것보다 훨씬 낫다. 정부부터 공무원 일자리 증원과 노동시간단축에 나서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정부조차 증원과 모성보호를 꺼려하면서 민간기업에 일자리 창출과 모성보호를 강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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