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4년 전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이자 해고자였던 윤주형을 마석 모란공원에 묻고 돌아온 날은 너무나 추웠다. 버티는 것도 힘들었다던 그의 유서를 보며 가슴을 쥐어뜯을 힘도 없었다. 그냥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함께 희망을 만들어 보자'고 정리해고당한 이들, 비정규 노동자들, 그리고 노조탄압으로 고통받던 이들이 한겨울에 같이 걷기도 하고 시청에 천막도 치면서 희망을 말했는데 너무나 추웠던 그날은 그 희망의 작은 불씨마저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이 비참한 현실을 끝까지 기억할 거라고, ‘잊히고 싶다’던 그의 유언을 결코 지키지 않을 거라고 소리쳤는데, 4년이 지나는 동안 상처도 점점 희미해졌다.

태어난 것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나 삶은 그렇지 못했다던 그가 짧은 인생을 마감해 버린 것은 박근혜 정권이 등장한 이후 수많은 해고자들이 절망감에 목숨을 던지던 바로 그때였다. 그래, 바로 ‘절망감’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정리해고와 파견제를 만들었고 노무현 정부는 비정규직을 더 늘렸으며, 이명박 정부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폭력으로 진압했다. 그리고 또다시 박근혜가 집권했다. 도대체 희망이 있는가를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이들이 죽음의 길을 택했고, 고통스러운 4년의 시간이 지속됐다. 그런데 4년 후 변화가 시작됐다. 광장은 촛불로 밝혀졌고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를 말했다. 마침내 국회가 박근혜 탄핵을 의결하던 날 윤주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기뻐하길 진심으로 기도했다.

그런데 그 촛불은 공장 담벼락을 넘지 못하고 있다. 뇌물을 주고받으며 국민연금까지 동원해 경영권을 넘겨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현대·기아차 사내하청은 불법이므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법원 판결이 있었으나 노동자들은 철탑에 오르고 광고탑에 올라 정몽구에게 법을 지키라고 요구해야 했다. 정몽구는 박근혜에게 거액의 뇌물을 바치고 노동자 불법행위를 처벌해 달라고 요구하고, 제조업에 파견을 허용해 달라고 요구했다.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아 달라고 요구한 정몽구는 아직 처벌받지 않고 있다.

그래서 수많은 윤주형들은, 수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은 아직 웃을 수 없다. 광화문을 밝히는 무수히 많은 촛불이 주권자임을 선언하고 있으나, 일터에서 노동자들은 아직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제 노동자들은 촛불을 들고 공장 담벼락을 넘고자 한다. 거리에서 잠자는 것은 이미 익숙해졌고, 거액의 손해배상으로 재산을 압류당하는 것에도 무덤덤해졌지만, 동료들의 죽음은 결코 담담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들이,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쫓겨나고 구속되고 두들겨 맞았던 이들이, 정리해고·노조탄압·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함께 싸웠던 이들이 광화문에 모인 촛불시민들에게 이제 민주적인 일터를 만들어 보자고 행진을 제안한다.

2월10일 특검 앞에서 재벌들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폭로할 것이다. 박근혜·최순실에게 500억원을 갖다 바치면서 삼성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황유미에게 500만원을 내민 삼성에게도 항의할 것이다. 법원 앞에서 법이 비정규 노동자, 정리해고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잔혹했는지 밝힐 것이다. 이재용의 구속영장을 기각시킨 법원은 선전전을 하다 옥신각신한 동양시멘트 노동자 7명을 구속했다. 이재용의 뇌물에 관대했던 법원은 현대차 비정규직에게 90억원의 손해배상을 명했다. 2월11일에는 노동법을 개악하고 노동자들의 절실한 권리입법을 외면하는 국회를 청소하러 갈 것이다. 그곳에서 마포대교를 건너 광화문까지 행진할 것이다.

우리는 제대로 된 민주사회를 위해 촛불을 들었지만,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될 때, 재벌을 사회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때 그 민주사회도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기업과 권력이 결탁해 비정규직을 늘리고 우리 미래를 불안하게 하며, 경쟁과 배제와 차별로 노동자들을 갈라놓고, 숨 막히는 장시간 노동으로 사회와 정치를 생각할 겨를도 없게 만들고, 노동자 요구를 불온한 것으로 매도하는 이 사회에서 수많은 윤주형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 죽음의 고통을 아프게 겪었던 이들이 이제는 행복한 꿈을 꾸려고 한다. 광장에서 촛불을 밝힌 우리 모두, 노동자가 권리를 인정받고, 서로 협력하고 존중하며, 건강하게 일하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나서 보자고 제안한다. 재벌 총수들을 구속하고 일터를 민주적으로 만들기 위해 2월10일과 11일 함께 행진하자고 제안한다. 우리의 촛불은 이제 시작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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