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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고-간접고용 노동자가 본 외주화 실태 ①] 실적 압박에 쫓겨 내 몸 안전도 못 챙긴다곽형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 곽형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지난해 창문에 매달려 일하던 전자제품 수리 노동자가 추락해 숨지고,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청년이 전동차에 치여 사망했다. 모두 간접고용 노동자다. 대기업은 외주화로 업무뿐만 아니라 위험까지 비정규직에게 떠넘겼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사회를 바라는 기대는 차고 넘친다. 안전사회를 여는 열쇠는 노동자들이 쥐고 있다. 일자리가 안정적이어야 집중도가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이치다. 안전업무 외주화는 분명 독이다. <매일노동뉴스>가 대기업 외주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네 차례로 나눠 지면에 싣는다. 위험업무를 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 감춰진 노동을 드러내고, 변화를 이끄는 작은 물결이 되기를 기대한다.<편집자>


날씨가 좋아서, 날씨가 좋지 않아서, 실적을 압박해서…. 우리는 매일매일이 위험하다. 나는 삼성전자서비스센터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다. 에어컨 성수기인 여름은 물론이고 부슬부슬 비가 내려도 공구를 챙겨 기계를 고치러 나선다. 습하고 무더운 날씨 탓에 에어컨이 고장 난 고객들의 불만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가야 할 곳이 한 시간 단위로 빽빽하게 차 있는 스케줄이 스마트폰 화면에 뜬다.

한 번에 수리를 완료하지 못하거나, 자재가 부족해서 재수리를 하러 한 번 갔던 곳을 다시 방문하다 보면 근무시간은 저녁 8시를 넘겨 밤 12시까지 이어진다. 그래도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일을 빨리 처리해야 실적을 좋게 받기 때문에 압박에 시달린다.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콜센터·팀장들이 돌아가면서 독촉하고 사람을 정신없이 쪼아 댄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삼성을 상대로 열심히 싸워 기본급이란 게 생기긴 했지만 최저임금을 살짝 웃도는 수준이다. 우리는 여전히 처리 건수에 좌우되는 실적에 목을 매단다. 여름 성수기 외에는 기준 건수를 초과하기 힘들다. 하나의 '콜'이라도 더 처리해야 우리 가족이 먹고살 수 있다.

상가 분식점에서 에어컨이 시원하지 않다며 서비스 요청이 접수됐다. 실외기는 건물 외벽 2층 높이에 설치돼 있다. 차에서 사다리를 꺼내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누군가 사다리를 잡아 주면 좋겠지만 하청업체에 그렇게 할 만한 인력은 없다. 사다리가 기울지 않게 곡예하듯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움직인다. 후텁지근한 날씨로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자꾸 눈으로 떨어져 시야를 가린다. 실외기에 손을 대니 전기가 찌릿찌릿하다. 누군가는 장갑을 끼면 괜찮지 않냐고 말하는데, 나는 이미 장갑을 착용했다. 장갑이 땀과 비에 젖었을 뿐이다.

사다리가 약간 기우뚱하는 느낌을 받은 동시에 난 이미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부러진 곳은 없지만 손에선 피가 흐르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다쳤는지 엉덩이와 허리가 너무 아팠다. 당장 병원으로 가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상처 난 손은 대충 휴지로 덧대 다시 장갑을 끼고 사다리를 세우고 두려운 마음으로 다시 사다리에 올랐다. 병원에 가면 고객 불만과 사고 책임이 고스란히 내게 돌아온다. 일을 멈출 수가 없다. 흐르는 피를 닦아 가며 수리를 마무리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영세사업장이 아니다. 나는 경력 1~2년의 초짜 노동자도 아니다. 그런데도 일하다 다치고, 실적 압박에 허둥대는 삶은 반복된다. 마치 늪처럼. “서비스 하면 삼성이죠”라고 홍보하지만 정작 수리업무를 하는 우리는 삼성 직원이 아닌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소비자는 삼성 제품을 구입하고 삼성에 수리를 의뢰하는데 정작 수리하는 우리는 외주 하청업체 소속이다. 삼성은 위험마저 외주화했다. 지난해 추락 사망사고가 발생하고, 노동조합의 대응으로 삼성은 성수기 한 달 동안 센터별로 장비임대계약을 맺게 해서 사다리 차량을 제공했다.

최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일정과 실적 압박, 2인1조가 아니면 확보할 수 없는 안전한 작업환경, 전기가 흐르는 실외기를 비 맞아 가며 점검할 수밖에 없는 조건은 원청인 삼성이 나서지 않는 한 개선하기 어렵다.

삼성은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홍보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수리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고객을 마주하는 서비스기사가 안전하게 일할 수 없는데 어떻게 질 좋은 서비스가 가능하겠는가. 국회가 돈벌이에만 관심을 가지고 노동자 안전은 모른 체하는 대기업 행태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곽형수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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