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은 지난 7일 오후 서울 강서구 KBS스포츠월드에서 정기대의원대회를 열고 민중단일후보 선출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정치전략을 논의했다. 투표 끝에 안건이 부결되면서 민주노총은 단일한 방침을 내걸고 대선정국을 준비하기 어렵게 됐다. 정기훈 기자

민주노총이 단일한 정치방침을 정하지 못했다. 가시화하는 조기대선 국면에서 '식물 대중조직'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정치전략 수립을 추진했던 중앙집행위원회를 비롯한 집행부가 제 진보진영이 합의하지 않은 안건을 밀어붙인 탓에 대선투쟁 계획 전체가 표류하게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노총 빈손 대의원대회 '대선투쟁' 표류 위기

8일 민주노총에 따르면 민주노총은 중앙위원회와 임시대의원대회를 조만간 열어 올해 사업계획과 대선투쟁 방향을 다시 논의한다. 지난 7일 정기대의원대회가 정치전략을 결정하지 못한 채 유회된 것에 따른 후속대응이다.

민주노총은 대선 화두로 "재벌독식 불평등사회를 지양하는 노동이 존중받는 평등사회 건설"을 제시했다. 박근혜 적폐 청산과 새로운 한국 사회 전망을 위한 5대 의제·10대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대선 정국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 같은 진보적 의제를 대선 국면에서 공론화하기 위해 진보후보가 필요하다고 봤다. 조합원들과 전국농민회총연맹·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국빈민연합 등이 100만 경선인단 민중경선제를 해서 단일후보를 선출하고, 이후 선거연합정당을 꾸려 내년 지방선거를 치르자고 제안했다.

정치전략 안건을 만드는 데 참여한 백석근 정치현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대의원대회 당일 "안건을 만들기 전에 조직 내부 의견수렴을 풍부히 하려고 노력했다"며 "특위와 중앙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올라온 안건을 통과시켜 달라"고 호소했다.

지도부 제출 정치전략
"나서지 말자"는 의견보다 지지 낮아


그런데 정치전략 논의가 시작되자마자 대의원들은 첨예한 의견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정치전략 안건을 통째로 폐기하자는 주장부터 대선 전에 진보대통합정당을 건설하자는 의견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졌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을 지지해 정권교체를 하자는 흐름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이런 의견을 담은 수정안만 현장에서 5개가 발의됐다. 수정안은 표결 끝에 모두 부결됐지만 원안 찬성률도 낮았다. 대의원 601명 중 211명(35.1%)이 찬성하는 데 그쳤다.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는 정신은 남겨 두되 진보정당 후보 단일화에 개입하지 말자는, 즉 현 상황을 유지하자는 내용의 수정안 지지율(48.9%)을 한참 밑돌았다.

민주노총이 정치전략 안건, 다시 말해 정치방침을 결정하지 못하면서 진보진영은 각자 계획에 따라 대선 국면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야당을 지지하는 민주노총 내부의 일부 흐름을 차단하려던 지도부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민주노총은 이달 중으로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올해 사업계획과 대선투쟁 계획 심의·의결을 재차 시도한다. 단일후보 전술이 막혔기 때문에 진보정당과 정책협약 같은 낮은 수준의 연대활동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한상균 위원장은 이날 면회를 온 민주노총 관계자에게 정치전략 안건 부결 소식을 전해 듣고 "5대 의제·10대요구를 알릴 수 있는 투쟁방법을 준비해 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원칙부터 재검토해야 하나"

한편 민주노총의 정치방침 논의가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 전까지 표류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정치전략 원안에 찬성하는 입장을 표명한 한 산별 관계자는 "노동자·민중이 주도하는 정치세력화를 아예 하지 말자는 의견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 이번 대의원대회에서 확인돼 충격"이라며 "내부 이견을 이유로 혁명적인 촛불정국에 민주노총이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게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원안에 반대한 다른 산별연맹 관계자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한다는 원칙을 먼저 확인하고 이후 어떻게 세부내용을 만들어 갈 지 합의했어야 했다"며 "정치세력화 원칙마저 한꺼번에 부결되는 상황이 발생해 안타깝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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