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준다. 15일 준다. 말일에 준다. 한두 번이 아니에요. 월세도 4개월이나 밀려 있고, 자동차에 기름 넣을 돈도 없어요. 너무 지치고 힘듭니다."

지난해 3월 인천시 옹진군 소재 건설·부동산컨설팅업체인 ㅇ개발에 경리로 입사해 사무실 관리업무를 하던 박아무개(52)씨. 입사 두 달 만인 5월부터 "회사가 어려워 월급 줄 돈이 없다"거나 "하도급업체 결제해 줄 돈이 없다"는 사장의 앓는 소리가 계속됐다. 대금 결제일을 앞두고 급할 때마다 박씨는 개인 돈 1천만원, 500만원, 1천만원씩을 회사에 빌려줬다. 급한 불을 끄고 나면 바로 돈을 돌려받을 줄 알았던 박씨는 찔끔찔끔 돈을 갚는 회사에 속이 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급기야 9월부터는 월 160만원씩 받던 임금까지 체불됐다.

지난해 11월 박씨는 "체불임금과 빌린 돈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사장한테서 되돌아온 말은 "너 그러려면 나가"였다. 박씨가 고용노동부에 체불임금 진정을 넣자 사장은 "또라이짓을 해서 (체불임금을) 줄 수 없다"며 모르쇠했다. 구두로 해고를 통보했다.

체불임금 요구하자 "나가라"

한 건설·부동산컨설팅회사가 밀린 임금과 회사에 빌려준 돈을 갚으라고 요구한 직원에게 폭언을 퍼붓고 구두로 해고통보하는 등 비상식적인 대처로 비판받고 있다. ㅇ개발은 직원 6~8명의 소규모 사업장으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폐업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일 노동당 인천시당은 "ㅇ개발이 임금체불은 물론 빌린 돈도 안 갚고 오히려 직원을 구두로 해고통보했다"며 "즉각 돈을 지급하고 해고를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인천시당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5개월분의 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였다. 월급이 밀리자 직원 2명은 회사를 그만뒀지만, 박씨는 나갈 수가 없었다. 회사에 빌려준 돈도 다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박씨에게 빌린 2천500만원 중 400만원을 상환하지 않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11월부터 박씨에게 자진퇴사를 요구했다. 박씨는 "ㅇ개발 박아무개 대표이사가 지난해 11월16일 '체불임금을 지급하고, 빌려 간 돈을 달라'고 하자 '회사를 그만두라'며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체불임금과 빌려준 돈을 받으면 퇴사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는데도 회사는 컴퓨터를 포맷하고 인터넷도 끊었다"고 증언했다. 사내 공유 이메일 비밀번호도 바꿨다. 다른 직원들에게는 "박 실장에게는 회사의 모든 일을 공유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박씨에게는 "2016년 11월16일자로 해고됐다"고 구두로 통보했다.

노동청 진정했더니 "또라이짓해서 줄 수 없다" 폭언

박씨는 같은해 11월18일 중부지방고용노동청에 체불임금 진정서를 제출했다. 회사에는 계속 출근했다. 진정이 접수되자 회사는 중부지방노동청에 "12월 말까지 체불임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박씨는 "지난해 11월말, 올해 1월10일, 25일 세차례에 걸쳐 다른 직원들은 월급을 줬는데 나한테만 월급을 주지 않았다"며 "사장은 '노동청에 신고해서 줄 수 없다', '또라이짓 해서 줄 수 없다'고 하더라"고 토로했다. 박씨는 설 연휴 직전인 지난달 26일 노동청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그는 "계속 출근하고 있는데 없는 사람 취급을 받고 있다"며 "억울하고 힘들다"고 울먹였다.

중부노동청 관계자는 "회사에는 출석요구서를 보냈다"며 "다만 고소장에는 부당해고 관련 내용은 빠져 있기 때문에 고소인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ㅇ개발 관계자는 "회사가 너무 어려워 몇개월치 임금을 못 준 건 사실"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산할 부분은 다 정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씨에게 구두로 해고를 통보했기 때문에 부당해고는 아니다"고 주장했다. 근로기준법상 직원을 해고하려면 사용자는 한 달 전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

지난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체불임금, 그 그늘에서 노동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지난해 노동부가 근로감독으로 적발한 임금체불액은 1천526억원이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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