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교섭은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으로 모인 노동자들이 자본가를 대상으로 벌이는 교섭을 말한다. 단체교섭(collective bargaining)이 말하는 ‘단체’엔 자본가의 것이라고는 머리카락 한 올 섞여 있지 않다. 여기서 ‘단체’는 노동자들이 떼로 모인 것을 뜻한다. 구체적으로는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으로 단결된 상태를 말한다.

단체교섭의 목적은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노동자의 이익을 개선하는 데 있다. 자본주의가 탄생하던 당시로 돌아가 보자. 노동자들의 조직은 없었다. 노동자들은 불순분자 무리로 간주됐다. 노동자들이 도모한 단체행동을 진압하려 군대와 경찰이 출동했고 피와 총탄이 난무했다. 하루 8시간 노동제조차 공산주의자의 음모로 여겨졌다.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시위는 반란으로 선언됐다.

19세기와 20세기 자본주의 역사는 노동자들이 처절한 투쟁을 통해 노동시간단축, 유급휴일, 출산휴가, 모성보호, 산업안전보건, 각종 수당, 기업복지를 실현하는 과정이었다. 제국주의 열강의 전쟁으로 수천만명을 살육한 제1차 세계대전을 겪고, 레닌과 트로츠키가 이끈 볼셰비키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한 뒤인 1919년이 돼서야 8시간 노동일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제1호로 만들어져 국제법적 상식이 됐다.

이후 30년이 더 흐르고 다시 한 번 수천만명을 희생시키는 세계 전쟁을 겪은 다음 노동자들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보장한 국제법이 ILO의 공식 협약으로 만들어졌다. 1948년 제정된 제87호 결사의 자유 협약과 1949년 제정된 제98호 단체교섭권 협약이 그것이다. 단체교섭은 단체행동을 전제한다. ILO가 말하는 단체교섭권에는 단체행동권이 포함돼 있다.

노동자들은 왜 떼(collective)를 지어 단결해 자신들의 조직을 만드는가. 혼자서는 권리와 이익을 지키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노동조합을 만드는 목적이 나온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이익을 개선하는 조직이다. 실현 방법은 단체교섭이다. 노동자들이 떼를 이뤄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이에 속해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자본가와 교섭하는 것이다.

2014년 1월 전주-서울을 오가는 버스를 운행한 어느 노동자는 “승객 4명에게서 승차요금 4만6천400원(지폐 4만5천원, 동전 1천400원)을 수령해 동전을 운전석 왼쪽에 따로 보관했고, 운행을 마친 후 운행일보의 현금란에 ‘1만1천원x4=4만4천원’이라 기재한 다음 회사에 4만4천원만 납부”하였다. 버스회사 사용자는 이를 횡령으로 보고 징계위원회를 열어 해당 노동자를 해고했으나, 전주지법은 해고가 부당하다고 결정했다. 사용자는 항소했고, 지난 1월 중순 광주고등법원(판사 함상훈·김용민·유상호)은 “(2천400원) 횡령액이 소액이라 하더라도 횡령행위는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책임 있는 사유”에 해당하므로 해고가 정당하다고 결정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판사가 해고 정당성의 근거로 단체협약, 노조위원장의 증언, 노사합의서를 들었다는 점이다. 해당 노동자가 속한 단위노조 위원장은 증인으로 나와 “(버스 노동자의) 행위가 횡령에 해당한다면 단체협약에 따라 해고를 해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단체협약의 ‘해고’ 조항은 “회사는 조합원이 회사의 재산을 횡령 또는 운송수입금을 부정 착복한 증거가 확실한 자는 노조 지부와 협의해 해고한다”고 규정한다. 노사합의서는 “CCTV 판독 결과 운전원의 수입금 착복이 적발됐을 시는 그 금액의 다소를 불문하고 그 해임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나는 2천400원 때문에 1998년부터 거의 20년을 회사를 위해 일해 온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다는 판사들의 결정에 반대한다. 하지만 여기서 관심을 갖는 대목은 삼성 자본가 이재용은 공금 400억원을 뇌물로 갖다 바쳐도 구속조차 안 되는데, 노동자는 단돈 2천400원으로 해고가 가능하냐는 논쟁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본가도 2천400원을 횡령하면 ‘해고’해야 한다.

내 관심사는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고 이익을 개선하는 데 기여해야 할 단체협약이 노동자를 해고하는 자본가의 수단이자 판사의 법리상 근거로 전락했다는 데 있다.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이유로 파렴치한으로 낙인찍혀 해고돼 왔던가. 이들을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노동조합의 존립 근거다.

“회사의 재산을 횡령하거나 운송수입금을 부정 착복한 증거가 확실한 자”가 자본가를 뜻하는 게 아니라 조합원을 상대로 한 표현이라면 단체협약에서 당연히 삭제해야 한다. “조합원에 대한 처벌은 노동조합이 참여한 징계위원회를 거쳐 결정한다” 정도면 충분하다. 단체협약에 덧붙여 별도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노사합의서도 “CCTV 판독 결과 운전원의 수입금 착복이 적발됐을 시는 그 금액의 다소를 불문하고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징계위원회를 통해 그 처벌 수준을 결정한다”면 충분하다.

단체교섭은 힘 관계를 반영한다. 단체협약의 질은 집단으로 뭉친 노동자와 자본가 중에서 누가 힘이 더 센가에 따라 결정된다. 노동조합이 단돈 2천400원으로도 해고할 수 있다는 합의를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단체협약은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노동자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나쁜 짓을 저지른 조합원이라도 먼저 보호해 주고 차츰 깨우치게 해 결국 더 나은 노동자로 만드는 것이 노동조합의 기능이다.

단체교섭에서 말하는 ‘단체’에 자본가가 포함되는 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착각은 단체교섭에서 말하는 ‘교섭’이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주고받기(give and take)’라는 오해로 이어진다. 그 결과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할 단체협약에 자본가의 권리와 이익이 스며든다. 거듭 말하지만 단체교섭은 자본가의 권리와 이익이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을 협상하는 것이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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