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지영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 지금이라도 시내 대형서점이나 인터넷서점에서 살 수 있는 책들이다. 그러나 이 책들을 스캔해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유로 철도노조 조합원 이진영씨는 5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남부지법에서 구속됐다. 19일,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은 430억원 뇌물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가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이 기각됐다. 같은날 전북의 한 버스 노동자는 버스비 2천4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이후, 해고무효확인 항소심에서 승소했던 1심 판결이 취소됐다. 해고가 정당하다는 것이다. 몇백 억원과 몇천 원, 그 액수만큼이나 천차만별인 법원의 판단에 국민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실에 분노하고 있다.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는 한 손에 저울을, 다른 손에 책을 든 정의의 여신상이 있다(서구의 정의의 여신상과 달리 눈을 가리지는 않았다). 평평한 저울은 ‘중립성과 공정성’을 상징한다. 법원의 중립성을 의심하는 것은 금기에 도전하는 것이다. 법원도 어느 정도는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깨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법원도 사회의 일부다.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하자 바뀌기 시작한다. “구조조정이나 합병 등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경영주체의 경영상 조치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노동쟁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해석해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촉진시키는 것이 옳다. 물론 이렇게 해석할 경우 우선은 그 기업에 소속된 근로자들의 노동 3권이 제한되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과도기적인 현상에 불과하고, 기업이 경쟁력을 회복하고 투자가 일어나면 더 많은 고용이 창출되고 근로자의 지위가 향상될 수 있으므로 거시적으로 보면 이러한 해석이 오히려 전체 근로자들에게 이익이 되고 국가 경제를 발전시키는 길이 된다”(대법원 2003.7.22 선고 2002도7225 판결). 자본가가 줄기차게 주장한(그 효과에 의문이 있는) ‘낙수이론’을 근거로 ‘기업프렌들리’를 표현한 ‘친자본적이고 반노동적’인 판결의 시작이다.

왜 이런 판결이 나올까.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고 돼 있다. 법관은 직업적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는 이상(理想)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법관은 알파고가 아니라 인간이다. 인간적 특성인 경험·감정·직관과 선입견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대한민국 현실에서 법관이란 공부를 잘 해야만 될 수 있다. 공부만 해야 하므로 자신이 노동자가 된 ‘경험’이 거의 없을 확률이 높다. 의식적으로 노동 현실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잘 알 수도 없다. 법관이 된 이후에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언론은 대부분 친자본적·반노동적이므로 자신도 모르게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영향받기 쉽다. 자본(재벌)에게는 우호적인 반면, 노동자(노동조합)에게는 적대적이거나 최소한 친하지 않은 ‘감정’을 가지기 쉽다. 국내 최대 재벌인 삼성의 경우 법관은 자신도 모르게 총수 구속으로 인한 기업 이미지 실추와 경영 공백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법관은 검사(혹은 피고인)가 주장하는 사실과 증거로만 판단하고자 하지만, 이런 인간적인 요소가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자본가와 권력자에게는 관대하고, 노동자와 힘없는 자에게는 가혹한 법관의 판결을 기울어진 저울로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적용되는 법(저울)이 하나라는 전제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 법원의 판결을 보면, 자본과 노동에 따로 적용되는 저울이 두 개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자본가와 노동자에 대한 판결 차이가 큰 것이다. 하나의 저울이 기울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일반적인 반성에 앞서, 자본과 노동 각각 다른 저울을 사용한 것은 아닌지부터 돌아봐야 하는 것이 우리 법원의 현실이다. 노동자와 자본가 모두 동일한 대한민국 법의 적용을 받는 국민이다. 헌법이 이러한 법 앞의 평등을 선언하고 있다.

덧붙이면 이러한 법원도 반면교사 역할은 했다. 이재용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바로 다음날 김기춘·조윤선은 구속됐다. 대한민국 마지막 성역은 삼성을 비롯한 자본이라는 사실을 법원은 촛불시민에게 분명히 가르쳐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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