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대상으로 청구한 구속영장이 결국 기각됐다. 한편에서는 특검의 준비부족과 성급함을 탓한다. 한편에서는 “법원이 재벌권력에 또 무릎을 꿇었다”는 반응이 나온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실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열쇠는 재벌이 건네준 돈의 대가성 여부다. 진실규명은 벽에 부딪힌 것일까. 법원이 법리를 외면한 채 정무적 판단을 한 것일까. 특검이 영장을 다시 청구하면 가능성은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삼성 봐준 사법부 더 이상 봐줘선 안 돼
권영은 반올림 집행위원장

▲ 권영은 반올림 집행위원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혜경(삼성LCD 뇌종양 피해자)씨는 오열했다. 유미 아버님인 황상기씨는 직업병 피해자들의 한을 풀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꽃을 사들고 특검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 정도로 실망이 컸다.

이 부회장에게는 430억원대의 뇌물 공여, 97억원의 횡령, 위증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그런데 구속이 되기는커녕 지금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다. 증거를 인멸할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 말이다.

법원이 산재노동자에게는 그토록 멀었는데 재벌총수에게는 역시 가깝구나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 부회장을 구속할 이유는 충분했다. 범죄사실도 충분히 소명됐다. 그간 직업병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삼성은 자유자재로 증거를 인멸했고 직업병을 은폐했다. 이런 전례로 봤을 때 당장이라도 구속시켜야 마땅하다.

삼성은 노동자의 임금과 국민의 노후자금을 털어서 경영권을 승계하는 데 악용했다. 특검이 빠른 시일 안에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해야 한다. 이번 주말에 더 많은 시민이 촛불에 참여해 목소리를 크게 냈으면 좋겠다. 이 부회장이나 재벌을 봐주는 사법부를 더 이상 봐줘선 안 된다.


간단한 사실을 복잡한 논리로 부정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물론 형법상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유사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법원이 형평성에 맞는 법리를 적용했냐는 점이다. 법원의 판결대로라면 모든 사람이 불구속 수사를 받아야 한다. 법원이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다고 했다. 범죄 사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도 했다.

다시 말해 법원의 귀에는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의 행위가 범죄로 들리지 않는다고 고백한 것과 같다. 판사의 눈에는 최순실과 박근혜가 남남으로 보인다고 한 것과 같다.

최순실을 언제 봤다고 삼성전자 사장이 날아가 지원을 하고 오나. 삼성이 정유라에게 해 준 것이 정상적인 지원인가. 최순실·대통령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삼성이 무엇을 위해 돈을 바치나.

대가성이 입증된 상황은 아니더라도 포괄적 뇌물죄로 볼 수 있다.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국민이 느끼는 상식과 법감정과는 차이가 있는 결정이다.

누가 보더라도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 아닌가. 법원이 아주 간단한 사실을 복잡한 법기법과 형식논리를 통해 부정하려고 든다. 국민들이 그토록 촛불을 들고 일어난 것은 뭣 때문인가. 판단이야 판사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은 법원에 법과 양심을 아우르는 결정을 바라고 있다.


뭘 더 소명하나, 영장 재청구해야
강문대 민변 사무총장

▲ 강문대 민변 사무총장

법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사유와 필요성을 부정한 이유로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에 대한 소명정도, 각종 지원경위에 대한 구체적 사실관계, 그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 여지, 현재까지 이뤄진 수사내용과 진행경과를 들었다.

하지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숙원사업이었던 이 부회장에게 박근혜 대통령은 승마 유망주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고, 이 부회장은 228억원을 정유라에게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정유라 지원이 논의되던 시기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자신의 지위를 남용해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 숙원사업을 해결하려 했던 의지와 지시행위, 삼성으로부터 지원된 자금의 성격, 지원된 시기, 뇌물죄 성립과 관련한 대통령의 직무행위, 제3자 뇌물수수 관련 묵시적 청탁도 가능하다는 대법원 판례까지 종합하면 특검의 소명은 충분하다.

이뿐인가. 뇌물죄에서 대가성은 ‘판단’의 대상으로 영장실질심사 단계에서 고려할 사항이 아니다. 이미 구체적 사실관계가 다 드러났는데 무엇을 어떻게 더 소명하라는 건가.

형사소송법은 구속 사유로 증거인멸의 우려를 명시하고 있다. 온 국민이 보는 청문회에서 위증을 한 피의자인 이 부회장은 증거 인멸의 가능성이 높다. 특검은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을 재청구해야 한다.


권력범죄와 개별범죄 판단 달리해야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의 생각은 이럴 것이다. ‘430억원대 돈을 준 것 등 사실관계는 확정됐고, 이재용은 그 자체를 부인하지 않는다. 다툼이 있는 것은 돈을 제공한 경위와 대가성이 있었는가 인데, 특검의 소명이 부족한바 이후 불구속 재판에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한 형사소송법의 불구속재판의 원칙에 따라 보면, 이 논리는 타당해 보인다. 다른 문제가 있다.

첫째, 이 원칙이 ‘블루 컬러 범죄’에는 인색하게 적용된다는 점이다. 원칙 적용의 형평성 문제이기 때문에 별도로 논해야 한다. 둘째, 이 사안의 사실관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재용이 불구속 상태에 있으면 실체적 진실이 계속 은폐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조의연 판사는 이상의 점을 간과했다.

판사에게 정무적 판단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범죄의 특수성을 고려해 판단하라는 요구는 정당하다. 권력범죄·기업범죄·조직범죄에서 수장의 구속 여부는 통상의 개별적 범죄를 범한 개인의 구속 여부와 달리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학문적 입장이다.


법리적 판단 아닌 정치적 판단
이호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이호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구속영장 발부에 대한 사유와 필요성·상당성 이 세 가지가 법원이 판단한 논거다. 역설적으로 법원이 발부 사유·필요성·상당성에 대한 법리적인 판단이 아닌 정치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판단에는 제1 기업인이기 때문에 국내외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도주의 우려와 증거인멸의 가능성 등 시급하게 발부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유에 있어서는 다툼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금액의 규모나 방법,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취한 이익은 명확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선의나 제3자의 강요에 의해서 430억원이 수수될 수 없다고 본다. 일반인의 경우 소액이라 하더라도 충분한 구속 사유가 됨에도 불구하고 상상할 수 없는 액수의 뇌물죄 적용 여부가 문제가 되는 사안에서, 사유에도 다툼이 있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소극적인 해석이다.

또한 현 시기에 부합하지 않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법치를 강조하고 사회 정의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법 적용의 예외, 유전무죄 같은 방식의 판단기준 자체가 시대적 흐름에 충분하게 조응하지 못했다.

덧붙여 논리적으로도 문제될 수 있는 부분이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구속됐다는 점이다. 영장 발부에 기준과 일관성·형평성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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