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일자리’를 두고 날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8일 일자리 구상을 밝혔기 때문이다. 문 전 대표가 유력 대선주자인 탓일까. 정치권에선 비판이 쏟아졌다. 재원 계획 없이 포퓰리즘 공약만 남발한다는 지적이다. ‘속빈 강정’이라는 꼬리표도 붙었다. 주로 문 전 대표 정적들의 주장이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지고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문 전 대표를 견제하려는 대선 주자들의 공격이다. 그만큼 문 전 대표의 구상은 파괴력이 있는 걸까.

문 전 대표는 현재 국면을 ‘국가비상사태’로 규정한다.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청년실업, 불평등과 양극화는 그 징표다. 우리 경제는 이미 침체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국가 위기는 좋은 일자리 부족에서 비롯됐다. 문 전 대표는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비상경제조치 같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해법은 크게 두 가지다.

정부가 직접 만드는 공공부문 일자리를 대폭 늘리는 방안이다. 소방관·경찰·복지공무원을 증원하겠다는 구상이다. 공공부문 일자리의 경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국가 평균이 23.1%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7.6%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려한 것이다. 문 전 대표는 공공부문 일자리 비율을 현재보다 3%만 올려도 81만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도 제안했다. 문 전 대표는 “법정노동시간인 주 52시간만 준수해도 근로시간 특례업종까지 포함하면 20만4천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따라 연차휴가를 의무적으로 다 쓰게 하면 30만개 일자리가 추가적으로 만들어진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이 직접 일자리를 챙기는 한편 모든 정책·사업에 ‘고용영향평가제’를 시행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문 전 대표가 약속한 일자리만 무려 131만개다.

문 전 대표의 구상은 진단과 해법 측면에서 과거와 유사하다. 2012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문 전 대표는 유사한 공약을 했다. 그 연장선이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만·나·바를 일자리 정책으로 약속했다. 만나바는 일자리를 ‘만’들고, ‘나’누고,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바’꾼다는 뜻이다.

당시 경쟁자였던 박근혜 후보도 유사한 공약을 했다. 박근혜 후보는 일자리 공약으로 늘(늘리고)·지(지키고)·오(질을 올리는)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박근혜 후보는 노동시간단축, 공공부문 청년일자리 확대, 공무원 단계적 증원, 정리해고 요건 강화, 대규모 정리해고시 고용재난지역 선포, 정년연장, 사내하도급 노동자 보호, 비정규직 사회보험 적용 확대 정책을 약속했다. 취임 후 박근혜 대통령은 고용률 70% 달성을 정부 정책 우선 순위로 삼았다.

하지만 정년연장과 고용재난지역 선포 같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정책이 지켜지지 않았거나 변질됐다. 박근혜 정부 재임기간인 지난 4년 동안 고용구조는 기형화됐다. 저성장 기조 속에서 50~60대 이상 취업자는 증가한 반면 핵심 노동층인 30~40대 취업자는 줄었다. 10~20대 실업자는 가파르게 증가했다. 2016년 청년실업률은 사상 최고인 9.8%에 달했다. 고용률 70% 달성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고, 늘어난 일자리도 주로 시간제와 같은 비정규직 일자리였다. 때문에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시간제 노동자 증가세가 유독 가팔랐다.

문 전 대표는 이런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거울삼아야 한다. 문 전 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정확히 진단하고, 구체적 실행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문 전 대표가 밝힌 구상은 진정성을 얻지 못할 것이다. 단순히 일자리수를 제시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고용위기가 엄습하고 있는 가운데 가장 절실한 민생은 바로 일자리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무너진 나라의 기강부터 바로잡는 게 우선이지만 민생을 뒷전으로 미뤄선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권의 일자리 논쟁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기왕에 문 전 대표가 시작했으니 다른 대선주자들도 그 바통을 이었으면 한다. 속 시원하게 일자리 구상을 밝히라는 얘기다. 그렇게 되면 일자리 논쟁은 좀 더 치열하게 전개될 수 있다. 속빈 강정은 채워지고, 포퓰리즘 공약은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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