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서용진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충남사무소)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노조는 인정할 수 없다.”

“안 돼. 내가 죽어도 그런 건 못해.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내가 경영하는 기업에 절대로 노동조합 구성 이런 거 할 수 없어.”

초일류기업이라고 자임하는 삼성그룹의 창업자 고 이병철의 유훈으로 전해지는 말이다. 그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당시 제일모직에 노조설립 움직임이 있자 직장폐쇄와 어용노조 설립을 통해 노조를 와해시키면서 이 같은 말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대기업 사주의 반노동조합적인 인식은 노동자 희생이 불가피한 것으로 정당화되던 60년~70년대 산업화 초기에나 유효할 것 같지만 놀랍고 비극적이게도 현재까지도 크게 힘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해 12월29일 대법원은 노조 설립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삼성에버랜드 직원 조장희(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 부지회장)에 대한 해고는 부당해고이자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삼성그룹의 전반적인 노동조합 탄압전략을 담은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의 실체를 인정하면서 조 부지회장이 문건에 따라 해고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S그룹 노사전략 문건에는 “노조 설립 주동자들을 즉각 징계하기 위해서는 평소 문제인력들의 사규 위반사항을 채증”하라거나 “기존 노조를 통해 신규노조 해산 추진하며, 삼성전자 등 노조가 없는 회사에서 노조가 설립됐을 경우 전 부분 역량을 최대한 집중하여 조기 와해에 주력”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무려 50여년 전 제일모직의 첫 노조를 와해시켰던 이병철의 노조파괴 전략이 아들-손자까지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삼성그룹의 부당노동행위 경과와 향후 전략이 상세히 기록돼 있는 무려 150여쪽에 이르는 문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은 2015년 1월 “문건의 작성 주체와 출처를 명확하게 확인하기 어렵고 문건을 작성한 행위만으로는 범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대법원과 전혀 다른 결정을 했다.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했고, 이런 불기소 처분을 다투는 재정신청에 대해서도 기각을 결정했다.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헌법상 노동 3권을 파괴하는 중한 범죄를 저질러도 단죄받지 않으면서, 노조를 적대시하는 유훈이 50년이 지나도 기업의 주요 사훈인 것처럼 이어지는 배경이 되고 있다.

최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이들이 만들어 놓은 적폐를 청산하고 검찰·정치 개혁 등 각종 개혁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 일환으로 저성과자 해고·성과주의 임금체계 등 노동자를 죽이는 박근혜표 노동개악이 아니라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진정한 의미의 노동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노동개혁은 ‘헌법에만 있는 노동 3권’이 되지 않도록 노조 설립과 활동을 방해하는 부당노동행위를 엄격하게 처벌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노동현장 부당노동행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노조파괴를 위해 노무법인·법무법인의 자문과 용역 등을 동원한 계획적·폭력적인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5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용자가 구속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실형이 선고된 것은 2013년과 지난해 각각 한 차례에 그쳤다.

노조 활동을 불온시하고 파괴전략에만 몰두했던 기업들의 부당노동행위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노조법상 불법행위 사용자들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을 강화해 징역형으로 단일화할 필요가 있다. 2년 이하로 돼 있는 징역형을 5년 이하로 상향하고,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로 인해서 물질적·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은 조합원과 노조가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당노동행위 동기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검찰 공안부에서 노동사건을 맡고 있는데, 앞으로 노동 문제에 대한 전문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전담부를 만들 필요가 있다.

소수 수구기득권 세력이 정치를 유린하면서 부의 대부분을 독점해 온 소득 불평등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10%에 불과한 노조 조직률을 올리는 획기적인 대책도 필요하다. 노조 조직률이 높으면 경제불황으로 인한 손실이 구조조정 등으로 노동자들에게만 전가되기 어렵게 된다. 임금·단체협상에서 노조의 협상력이 높기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인 사회보장제도까지 더해져서 소득 불평등이 해결되는 이른바 선순환경제도 가능하다.

부당노동행위를 엄벌하고 노조 조직률을 높이는 일은 소득 불평등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우리가 추진해야 할 진정한 노동개혁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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