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동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1천만 촛불이 활활 타오른 지난해 말 “하데스의 강이 아무리 깊고 험해도 맹골수도만 하랴. 나의 눈물이 바다로 흘러 너희들의 고통을 씻어 줄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이라며 세월호 희생자들을 애도하던 사람. 2017년 첫 촛불집회에서 무도한 정권의 심판과 민중의 승리를 염원하며 소신공양(燒身供養)한 승려. 세월호 참사 1천일에 "박근혜 즉각 구속, 대선 무효소송 속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한일 위안부 합의 및 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 사드 배치 반대, 평화통일 완성"을 유지로 남긴 정원비구.

정원스님은 1977년 해인사로 출가해 78년 사미계를 81년 비구계를 수지했다. 법주사 강원에서 공부하다 80년 광주학살과 불교 법난에 저항하는 불교탄압 공동대책위원회 일원으로 활동했다. 87년 6월 항쟁에도 적극 참여했고 이듬해 조계종 승적을 버렸다.

이후 조계종 승적 없이 개인 수행을 하다 2005년부터 다시 사회운동에 관심을 보였다. 2006년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반대투쟁에 참여했고 이듬해 동국대 신정아 사건 때는 7일간 동국대와 조계사를 맨발로 오가며 참회 수행을 했다.

2007년 12월5일 이명박 후보 의정부 유세 때 계란 투척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명박 정권 기간에 BBK 특검에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는 1인 시위, 광우병 수입쇠고기 반대 투쟁, 4대강 사업 반대 투쟁, 이명박 탄핵운동을 펼치고 한명숙 전 총리 구속반대 투쟁을 했다.

2012년 박근혜 당선 이후에는 대선 부정선거 진상규명 및 처벌투쟁을 펼쳤다. 제주 강정 해군미군기지화 반대, 밀양 송전탑 반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 탈핵 운동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각종 시위 현장에 나섰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때 충격을 받은 뒤 보름간 식음을 전폐하며 팽목항에서 기도를 했다. 스님은 그럼에도 생명 하나 건져 낼 수 없었다는 절망감과 회의를 느끼며 베트남으로 건너가 1년 넘게 탁발생활을 했다. 이때 인권저항운동을 체험하고, 자비수행 상좌불교행도 더 크게 정진했다는 것이 그와 10여년을 함께 정진수행한 창원 금강사 주지스님의 증언이다. 그는 2016년 1월 한일 위안부 합의에 반발해 급히 귀국했다. 귀국 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반대하며 외교부 청사에 화염병 투척 미수로 경찰에 체포돼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은 2심 계류 중이다.

2017년 1월7일 밤 10시30분 11차 촛불집회가 열린 광화문 경복궁 앞에서 소신공양을 했고, 1월9일 세월호 참사 1천일 자비와 보시의 가르침을 남기며 입적했다. 영결식은 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박종철 열사 30주기 추모제와 12차 촛불집회가 있던 1월14일 진행됐다.

올해 신년 벽두 촛불집회에서의 소신공양은 충격 그 자체였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 실린 김동리의 단편 '등신불'에서 만적의 소신공양 장면을 읽으며 모골이 송연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63년 남베트남 응오딘지엠 정권의 폭압을 종식시킨 소신공양은 또 얼마나 놀라왔던가. 이 소신공양으로 이후 베트남전의 승패는 사실상 결정됐다는 주장도 있다. 100명을 넘긴 티베트 승려들의 독립을 위한 소신저항 투쟁도 끊임이 없다. 충격적인 소신항거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목숨을 불태워서 그 결과를 내어 남들에게 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용맹정진하는 승려들의 소신공양은 지구촌 곳곳에서 민중의 각성과 투쟁을 촉발시키는 매개로 작용해 왔다.

정원스님이 소신공양에 나서기 전 세상을 향해 던진 메시지는 페이스북 담벼락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겨울은 깊어 가는데 봄은 과연 올 것인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외쳤던 이상화의 봄과 내 봄은 다른 것인가.”

“민중이 승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됩니다.”

“문수스님 이남종 열사 분신은 죽음이 아니라 가장 강한 저항이었다.”

“나는 항상 광화문 베이스캠프를 등지고 청와대로 간다. 이 거리를 메우기를 바라며 (…) 오늘은 제발 차벽을 넘자. 만날 사람은 청운동 방향 최후 저지선으로 오시오.”

그가 1월7일 오후 5시36분 마지막으로 남긴 글은 “진정 나는 당신들이 원하는 것을 모르겠어”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과 대선 시계가 빨라지는 지금 소신공양한 정원비구와 역사가 묻고 있다. 촛불항쟁의 주체들이여 그대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hdlee20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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