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언젠가 한(恨)이라는 단어가 영어로 번역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인의 고유한 정서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호기심이 생겨서 국어사전에서 검색해 봤다.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

예상치 못한 의미에 놀라서 한참 동안 모니터를 응시했다. 고작 한 글자에 저토록 많은 감정이 담길 수 있다니. 이래서 사람들이 말로 형언할 수 없이 문드러진 감정을 표현할 때 한(恨)이라는 말을 쓰는구나 싶었다. 한(恨)에 이어 화(火)라는 단어가 궁금해졌다. "몹시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나는 성"이라고 나온다. 그리고 이 감정을 표출하는 상태가 분노(憤怒)다.

세 가지 단어를 나의 방식으로 해석하면 이렇다. ‘화’를 ‘분노’로 표출할 수 없을 때 ‘한’이 쌓인다. 몇 가지 응용도 가능하다. 정당한 분노를 표현했지만 믿었던 사람들에게 긍정받지 못하거나, 부조리한 힘의 논리에 의해 억울하게 좌절될 때도 한이 쌓인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강자와 약자 간 힘의 불균형이 몹시 크다. 그리고 강자는 윤리가 없고, 약자는 연대에 취약한 경우가 많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한국 사람들이 한(恨)이 많다"는 말의 의미를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노동을 하며 겪는 고통은 단순히 임금이 적고 야근이 잦은 문제로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일터에서 좀 더 본질적인 인간 존엄의 위기를 발견한다. 직장 상사는 직원의 태도나 인격을 꼬집으며 모욕적인 비난을 내뱉고, 회의 자리에서는 사소한 실수가 전체 임직원에게 비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주변 동료들의 냉담함이나 은밀하게 들려오는 험담을 경험하고, 때로는 주어진 시간 내에 처리할 수 없는 과도한 업무를 배정받으며 "너의 능력을 증명하라"는 소리 없는 주문에 시달린다. 한국의 많은 노동자들은 거의 매일같이 화(火)가 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恨)이 쌓이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슬픈 광경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구조 속에서 작동된다. 예컨대 회사 수뇌부는 정규직과 계약직, 파견직원과 용역직원이 뒤섞여 비윤리적인 갈등에 노출되도록 방치하는 상태를 두고 ‘경영의 전문화·합리화’라고 표현한다. 기업조직이 지향해야 할 가치와 비전,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동료 직원들의 협력은 오간 데 없고 그저 각자 알아서 살아남으면 장땡인 정글을 조성하는 것이 ‘기업가 정신’이라고 말한다. 웃기는 현실이다.

근로계약서와 노비문서는 다르고, 노동은 임금을 대가로 삼는 노동력의 교환 행위일 뿐 사업주나 직장 상사에 대한 인격적 종속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헌법 정신과 노동권 이념은 많은 노동자의 현실에 비춰 볼 때 그저 좋은 글자들의 나열일 뿐이다. 지난 수십 년 노동운동의 힘으로 많이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세상은 원통하다. 예전 사장들이 직원을 노비로 대했다면, 오늘날 사장들은 직원들을 콜로세움의 검투사로 대하며 관중석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야 한다.

한 명의 시민으로서, 그리고 청년노동조합의 위원장으로서 갖는 새해 다짐이 있다. 옆 사람의 화(火)를 긍정하고, 한(恨)을 직면하려 한다. 이 응어리진 감정은 글자 그대로 불같이 뜨겁고, 넘어서야 할 벽은 대개의 경우 높고 단단하다. 예전에는 겁이 많아서 누군가의 분노 앞에 망설였는데, 앞으로는 안 그래야겠다. 한 사람의 체온이라도 더 뜨거워져야 세상이 좀 더 따뜻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날이 추우니, 우리 손이라도 잡자.



청년유니온 위원장 (cartney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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