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우려했던 대로 2016년 체불임금 총액이 무려 1조4천억원이라고 정부가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고의로 지급하지 않거나 일부를 지체하는 좁은 의미의 체불임금이 이 정도다. 여기에 미제인 최저임금 위반과 통상임금 사건까지 포함하면 그 액수는 몇 배에 이를 것이다.

오늘의 체불임금 문제는 국회가 책임져야 한다. 노동자와 시민들이 든 ‘촛불’이 마치 자신의 공인 양 국회와 대선후보들은 앞다퉈 ‘축배’를 들고 있는 모양이다. 이미 정권을 차지한 듯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러한 상황은 정의감에 맞지 않다. 희생한 자와 결과를 누리는 자가 다르지 않는가. 언제까지 촛불을 더 들어야 하나. 도대체 노동자들의 체불임금 문제조차 풀지 못하는 대표자가 무슨 소용인가. “정권이 없어서라거나 정권이 주어진다면 체불임금을 해소하겠다”라는 변명은 하지 말라. 체불임금 해소는 정부와 정파를 가릴 문제가 아니다. 제발 정권이 바뀐 후 “그럴 줄 알았다”는 자조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헌법과 법률상 책무를 논하기 전에 최소한의 양심에 호소한다. 국회는 대선이 아니라 당장 체불임금을 해결하라.

몇 해 전 1조원을 넘긴 이래 매년 추석 무렵이면 1조원을 넘어 최대치를 경신한다. 그동안 체불임금 해소를 담당한 행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한심할 따름이다. 노동부의 근로감독 업무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들의 임금조차 지켜 주지 못하는 노동부가 무슨 노동부인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한 것도 아니지 않는가.

1천200여명에 불과한 근로감독관 숫자 대비 과중한 업무량을 본다면 한편으로 측은한 맘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미안하지만, 단언하건대 그건 핑계다. 노동부에 주어진 책무를 벗어나 쓸데없는 데 힘을 쏟은 탓이 크다. 노사관계 문제에 근로감독관이 개입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단체협약 시정명령을 내리는 과정에서 엄청난 시간과 인력을 들이는 게 요즘 노동부의 모습 아니던가. 그럴 시간이 있다면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받아 주는 데 써야 하지 않겠나.

체불임금 1조4천억원 시대, 이번 겨울 가장 추운 기간에 한국노총은 26대 임원(위원장-사무총장)을 뽑는다. 조합원들은 물론이고 현장 노동자들과 시민들은 한국노총과 우리나라 노동운동을 이끌어 갈 훌륭한 리더십을 기다리고 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옥중에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라서 차기 한국노총 위원장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질 모양이다.

특히 대선을 앞둔 터라 차기 한국노총 위원장에게 거는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커 보인다. “노동자와 노동기본권을 이해하는 후보자 당선을 위해 선거운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경청할 만한 주장이다. 우리 사회 노동자들과 시민들도 노동자 입장에서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실천하는 정부를 가질 때가 되지 않았나.

거창한 기대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필자는 새로운 한국노총 위원장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책무로 체불임금 해소를 꼽고 싶다. 임금이 노동자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국회나 정부에게서 체불임금을 해결할 능력이나 의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솔직히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한국노총이 앞장서 “한국노총이 체불임금을 해결하겠다, 맡겨 달라”고 자임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한국노총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사업이다. 노동자들의 요구에 답해야 하는 노총의 본분에 딱 맞는 일이다. 이참에 체불임금 문제만을 전담하는 공적기관을 한국노총에 유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이승욱 이화여대 교수는 최근 ‘임금지급보장기구’ 같은 전문기관 설립을 제안했다.

이 정도 공약을 실천하는 정부를 함께 만들어 내는 한국노총 위원장. 촛불을 든 노동자들은 그런 위원장을 원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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