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 7일, 2017년 첫 촛불집회가 열렸다. 지난해 10월29일부터 매주 토요일이면 광화문광장 등 이 나라 주요도시의 광장은 붉게 타올랐다. 11번째 촛불집회였다. 마침내 검찰 특별수사본부와 특별검사 수사를 통해서 박근혜-최순실 일당을 처벌하도록 하고,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을 통해 대통령 박근혜를 탄핵심판대에 세워 내 이제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앞두고 있다. 박근혜 이후의 세상을 두고 말하는 때가 됐다. 언론은 다투어 여론조사 결과를 뉴스로 내보며 정당과 대선후보 지지율을 보도하고 있다. 탄핵결정이 나오면 헌법과 법률이 정해 놓은 대통령 선거절차에 따라 진행될 거라고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될 일을 두고서 이 나라는 벌써부터 야단이다. 정당들도 예상후보들도 박근혜 다음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정책을 말하며 지지를 모으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적폐 청산을 말하며, 박근혜표 정책의 폐기를 공약하고 있다. 그중에는 노동정책도 있다. 10%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예상후보 중 문재인과 이재명은 노동정책을 말하고 있는데, 반기문은 아직까지 구체적인 정책에 관해서 말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과 이재명은 주요 노동정책으로 노동시간단축을 말하고 있다. 토론장에서, 촛불집회장에서, 언론 인터뷰에서 청년의 실업 해소와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 노동시간단축을 말하고 있다.

2. 지난 6일 이재명 성남시장은 춘천교도소에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면회한 자리에서 “현행법대로 주 52시간 노동을 지키고 초과근로수당을 제대로 지급하게 하면 일자리가 100만개는 늘어난다”며 “근로감독관을 5천~1만명을 고용하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근로조건도 개선할 수 있다”고 밝혔고, 이에 한상균 위원장은 “민주노총에서 누차 주장하던 것”이라며 화답했다고 9일 매일노동뉴스는 보도했다. 그동안 이재명이 계속해서 해 왔던 노동시간단축에 관한 주장이다. “현행법대로 주 52시간 노동을 지키”면 “일자리가 100만개는 늘어난다”고,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 노동시간단축을 주장하고 있다. 이재명만의 주장은 아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지난달 22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보수와 진보 합동토론회’에서 52시간의 법정노동시간 준수를 주장하며 "노동시간단축만으로도 70만개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며 "이 경우 줄어드는 노동자들의 임금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명과 마찬가지로 문재인은 주 52시간 노동시간 준수를 일자리 대책의 하나로 내세우고 있는데, 단지 늘어나게 되는 일자리가 100만개냐 70만개냐만 다를 뿐이다. 이재명은 지난해 11월 기준 1천195명인 근로감독관을 5천~1만명까지 대폭 확충해서 근로감독관 일자리도 늘리고 52시간 노동시간을 준수토록 하겠다고 했고, 문재인은 노동시간단축으로 줄어드는 노동자 임금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했다. 근로감독관 확충으로, 임금문제에 관한 사회적 대타협으로 세부 실천방법까지 제각기 제시하고 있다.

3. 2015년 말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우리 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2천124시간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멕시코 다음이라고 보도됐다. 이는 노동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자료를 가지고 산정한 것이었는데, 노동부 조사에 기업의 인사담당자가 해당 기업의 노동시간을 축소해서 보고한 경우가 있어 정확히 파악된 연간 노동시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에 따라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2천285시간으로 OECD에서 가장 길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일본의 경우 연간 노동시간은 1천729시간에 불과하며 러시아 1천985시간, 미국 1천789시간, 이탈리아 1천734시간, 스페인 1천689시간, 노르웨이 1천427시간 등이고, 가장 짧은 독일 1천371시간과 우리 노동자를 비교했을 때는 914시간 차이가 났다. 하루 8시간 근로로 계산하면 우리 노동자들이 독일 노동자들보다 114일을 더 일해서 주휴일 등까지 포함해 보면 1년에 4개월을 더 일하는 셈이다. 당시 ‘연장근로시간 제한의 고용효과’라는 보고서를 통해 김유선은 주 52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제한하면 52시간 근무 62만4천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48시간 근무의 경우에는 67만7천개, 44시간 근무 73만8천개, 40시간 근무 81만2천개, 30시간 근무 108만2천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보고서를 전제로 하고서 보면 이재명과 문재인은 새로이 창출되는 일자리가 주 몇 시간짜리냐에 따라 그들이 말한 바를 ‘팩트 체크’할 수 있겠다. 한편 당시 이와 관련해 나는 2015년 초 “통계청이 발표한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2천599만9천명으로 약 2천600만명”이고, “위 OECD 발표에 따르면 이들이 1인당 평균으로 연간 2천124시간을 일한 것이”라 하는데, “이들이 법과 단체협약·취업규칙이 정한 대로 휴일·휴가와 법정(소정)근로시간을 일한다면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연간 1천800시간 정도이니 1인당 연간 324시간을 초과해서 일한 셈이”고, “이 초과시간만 휴일·휴가를 사용하고 법정(소정)근로시간만 일한다면 약 3천68만명이 일해야” 하니 “법정(소정)근로시간만 준수해 취업자들이 일했더라면 지난해 약 468만명의 일자리”가 더 있어야 했다고 매일노동뉴스 칼럼에 쓴 바 있다(2015년 11월3일자).

4. 노동시간단축은 일자리를 만든다. 이 자본의 세상에서 노동자들은 노동시간단축을 위해 투쟁해 왔다. 이미 130여년 전에 미국 노동자들이 8시간만 일하고 살겠다고 8시간 노동제를 외쳐 파업을 하고 광장과 거리에서 사용자 자본과 권력의 폭력탄압에 맞서 싸웠다. 5·1 노동절은 이렇게 이 세상의 노동자의 날로 왔다. 1917년 러시아혁명을 통해 8시간 노동제가 최초로 국가의 법으로 선언됐고, 1919년 국제노동기구(ILO)를 창설하면서 제1호 협약으로 8시간 노동제가 채택됐다. 여기서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1주 48시간, 1일 8시간 노동제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최장의 노동시간을 정한 바로 그 노동제였다. 그 뒤 1935년에는 주 40시간 노동제에 관한 ILO 제47호 협약이 채택됐다. 그리고 1953년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근로기준법을 제정하면서 1일 8시간, 1주 48시간을 법정근로시간으로 선언했다. 국가가 법으로 노동시간 제한을 규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2차례 개정을 거쳐 오늘 근로기준법은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고,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제50조). 이 근로기준법 규정을 통해 우리는 분명히 법정근로시간, 노동제를 도입했다. 그렇다면 국가는 이를 초과해 노동자가 노동한다면 그 사용자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이 정한 대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야 했다(제110조1호). 그러나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간에 12시간을 한도로” 위 법정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며(제53조1항), 그 적용을 외면해 왔다. 지금까지 노동부와 검찰·법원 등 대한민국의 법집행 권력이 해 왔던 일이다. 그것으로 법정근로시간, 노동제는 당사자 간 합의로 하는 연장근로에 의해서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사용자가 시키고 노동자가 일하면 그만인 법정근로시간, 노동제라고 취급하며 근로기준법 제50조를 철저히 짓밟아 왔다. 노동법 교과서도, 법원의 판례도,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도 이렇게 제50조의 노동제는 쓰레기로 취급해 왔다. 노동자를 사용하는 자본도,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규제해야 할 권력도, 법정근로시간을 노동제로 해설해야 할 학자도 한통속으로 근로기준법 제50조의 법정근로시간을 이렇게 쓰레기로 취급하고서 그들은 노사정협의니 노동정책 토론이니 운운하며 노동시간 단축에 관한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달려왔다.

5. 노동시간단축에 관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박근혜 정권은 국회에 제출했다. 2015년 9월15일 노사정 합의 직후 새누리당이 발의한 ‘노동시장 선진화 법안’ 5개 법률안의 하나로 제출됐다. 일요일 등 주휴일·휴일까지도 1주일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서 근로기준법 제53조의 연장근로시간 12시간에 주휴일 노동까지도 포함되도록 하겠다는 개정안이었다. 휴일·일요일도 1주일에 포함되는 것으로 하겠다는 것이니 황당한 법안이었다. 초등학생조차도 학교에 가지 않는 일요일을 포함해서 1주일이 7일이라고 안다. 오직 휴일근로는 1주간 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행정해석해 온 노동부, 이 나라 정부가 이조차도 알지 못하는 바보였다. 그럼에도 그 바보가 우기면서 1주일에 일요일 등 휴일까지 포함되는 것으로 하겠다고 법안을 발의했던 것이다. 그런데 주 52시간 노동을 준수하도록 해서 일자리 창출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으니, 적어도 문재인과 이재명은 바보는 아닌 셈이다. 그들은 “현행법대로 주 52시간 노동을 지”켜서, ‘52시간의 법정노동시간 준수’해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주 52시간이 노동자들의 노동제, 법정근로시간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근로기준법 제53조가 법정근로시간, 이 나라 노동자의 노동제라고 다같이 알고 있는 것이다. 오늘 이재명도 문재인도 법정근로시간은 주 52시간이라고 알고서 자신이 대권을 차지하면 이를 준수토록 법집행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분명히 그들은 바보가 아니지만, 이 자본의 세상에서 노동자의 노동시간단축에 관한 법정근로시간, 노동제에 무지하다는 걸 말하고 있다. 어찌 문재인과 이재명, 그들만의 탓이겠는가. 오늘까지도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이 나라 노동자단체도 1일 8시간, 주 40시간의 법정근로시간을 준수토록 하라고, 당사자 간 합의로 하는 근로기준법 제53조의 연장근로는 사전에 예상치 못한 특별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 제50조를 노동제로 내세우지 않는다. 그러니 문재인과 이재명이 노동제에 무지하다고 비난할 일만은 아니다. 세계 최장 수준의 노동시간이라는 우리의 노동현실은 노동제의 무지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그것은 이 나라 노동자운동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52시간 노동제는 아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