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에 맞선 극우 집단의 시위에 대형 성조기가 등장했다.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를 두고 "위안부 합의 위반"이라며 일본 외교관들이 도쿄로 소환됐다. 성조기가 휘날리는 현장에는 군부 쿠데타와 계엄령 선포를 촉구하는 주장이 난무한다. 한국에서 친미파는 친일파고, 이들의 본질은 극우라는 사실이 또렷이 드러나고 있다.

미국 문제와 관련해 촛불의 요구는 사드 반대를 포함한다. 친미파, 즉 극우 진영은 사드 배치를 찬성한다. 일본 문제와 관련해 촛불은 2015년 12월 아베-박근혜 연합의 ‘위안부 합의’를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친일파, 즉 극우 진영은 위안부 합의에 찬성한다. 그 배후에는 미국의 일관된 계획이 도사리고 있다.

21세기 들어 위안부 문제 ‘해결’은 미국의 숙원사업이었다. 그 목표는 서태평양에서 미-일-한 삼국 우익동맹의 완성이다. 이 동맹의 주인은 미국이며 중간에 일본이 있고 맨 밑에 한국이 자리한다. 동맹의 제일 목표는 미국의 안보이며, 다음 목표는 일본의 안보다. 한국의 안보는 미국과 일본의 안보를 위해 존재한다. 두 나라 안보를 위해 한국의 안보는 희생될 수 있음을 뜻한다.

사드 배치는 군사적 효용에서 한국의 안보 이익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 지정학적 관계와 경제적 이익에서 오히려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침해한다.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가 악화함으로써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그 결과, 한반도를 둘러싼 대외관계에서 한국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미국과 일본의 목소리만 커졌다.

국제관계에서 별다른 역할을 못한다는 말은 주권국가로서의 자주성이 상실됐다는 말과 같다. 동북아에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한국 정부는 적극적 주체가 아니라 미국과 일본에 의존하는 수동적 객체로 전락한 지 오래다. 한국민을 대신해 동북아를 둘러싼 주판알을 튕기는 곳은 서울이 아니라 워싱턴과 도쿄가 돼 버린 것이다.

역사적으로 한국에서 민주주의 발전은 남북 화해와 동북아 평화를 증진시켰다. 반대로 극우 독재세력의 발흥은 남북관계를 적대적으로 만들면서 동북아에서 군사적 긴장과 전쟁 위험을 고조시켰다. 안타깝게도 미국과 일본은 한국의 민주주의 진영보다 군부 독재와 우익 파시즘 세력을 지원해 왔다.

지금 촛불은 이명박-박근혜 우익 독재의 청산을 넘어 일상의 혁명을 요구하고 있다. 광장에 나온 시민들은 일터·학교·가정에서 민주주의를 북돋우고 인권을 키우는 과제를 내세운다. 민주주의는 ‘주말의 광장’을 넘어 ‘매일의 현장’에서 관철돼야 한다는 각성이 커지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민주주의가 국내적 상황에만 적용되는 가치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그 일국적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촛불의 완성을 위해 민주주의는 국제적 과제를 완수해야 하는데, 이는 촛불로 타오른 민주주의 투쟁이 한국을 넘어 한반도로,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로 확산돼야 함을 뜻한다.

한반도의 민주주의는 남북 화해에서 출발한다. 군사적 긴장 완화를 통해 군비를 축소해 북한은 사회적 기간 시설 구축에, 남한은 사회적 복지제도 확충에 국가 재정을 투자해야 한다. 이를 통해 남북 간의 경제활동과 사회 교류를 활성화하고, 남북한 민중이 누리는 자유와 평등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남북 화해는 지속가능한 민주주의의 토대가 될 한반도의 지정학적 영향력을 키우고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다지는 출발점이다. 서태평양 지역에서 세계전쟁을 초래할 미국-일본-남한 대 중국-러시아-북한의 적대 구조를 해체하고, 통합된 남북한(consolidated Koreas)이 중재자 역할을 하는 평화체제를 건설하는 단계로 나아갈 때 한국의 민주주의는 그 지속가능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남북 화해와 동북아 평화가 한국 민주주의와 동전의 양면이라 할 때, 촛불혁명이 달성해야 할 국제적 임무는 국가보안법 폐지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이 될 것이다. 한국 사회가 내부적으로 직면한 불평등과 불공정의 문제는 고전적 개념으로 ‘계급 모순’이라 부를 수 있다. 한국 사회가 외부적으로 직면한 남북관계의 파탄과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 고조 문제는 ‘민족 모순’이라 부를 수 있다. 역사적으로 계급 모순과 민족 모순은 같은 동전의 양면으로 존재해 왔다.

촛불은 미-일-한 삼자 동맹의 성격을 퇴행적이고 낡아 빠진 우익 동맹(right-wing alliance)에서 민주 동맹(democratic alliance)으로 전환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 화해와 동북아 평화가 필요하며, 국내적으로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국제적으로는 한반도의 정전협정 체제를 평화협정 체제로 전환시켜야 한다.

촛불 정세는 친미파와 친일파가 동일한 집단이고 이들이 가진 사상의 본질이 극우적 국가주의(파시즘)이라는 사실, 광장의 민주주의가 현장의 민주주의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남북 화해와 동북아 평화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사실, 한반도에서 계급 모순과 민족 모순이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된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고 있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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